연대도에 꽃이 피기까지

섬 섬 섬 2009/06/10 09:06

동호동 239-11번지에서 12번지로, 다시 11번지에서 12번지로 메뚜기 처럼 옮겨 살다가 어머니와 형님 내외, 그리고 조카가 사는 삼익아파트로 합류하는 과정은 ‘불안정한 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를 뼈져리게 해줬다. 어머니와 둘째 누나의 이사에도 자식과 동생 노릇을 해야 했고, 형님이 광도면 우동리 생가 옆 아지터에 텃밭을 일구고 개와 닭을 키우기 시작한 것도 못본 척 할 수만은 없었다. 황망하게 큰누님을 여위고도 술자리는 빼놓지 않고 좇아다녔으며, 바다해설사 수업의 재미에도 흠뻑 젖었으니 ‘경황이 없었다’는 핑계가 잘 먹힐 만한 두어 달을 보냈다. 이런 와중에도 윤국장의 “섬에 가자”는 제의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던 것은 정신머리 없이 얽히고 설킨 복잡한 나날에서 도망치고 싶은 이유도 없지 않았지만, 무엇인가를 긴 호흡으로 쉬임없이 일궈나가는 사람의 곁에 난생처음 서보는 감회를 놓치기 싫어서였다.

말하자면 윤국장은 내가 통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그야 말로 ‘몸소’ 보여준 것인데, 그 교수법이 바람에 물결 흐르듯 하도 편안한 것이라 섬기려는 쪽에서도 술친구 대하듯 스스럼이 없어진다. 그는 섬에 갈 때마다 풀 이름, 고둥 이름, 새 이름 하나씩은 꼭 일러줄 뿐 아니라 그것들과 사람이 공생하는 세상을 그려준다. 그러면 컴퓨터나 두드리며 살던 생태맹인 나는 도무지 뭐가 뭔지 구분이 안가 무식하고 엉뚱한 대답을 할 뿐인데, 그런 순간에서도 실소하며 자지러지거나 술잔을 부딪힐 뿐이니 얼굴이 붉어질 새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가장 배우고 싶은 것은 잘 울고, 잘 따지고, 잘 성내는, 어찌보면 다혈질인 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한 발 자기 길을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점이다. 그런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놀랍다 못해 경이로울 정도인데, 지난 1년 여 동안 내가 눈여겨 본 그의 대표작은 당연 연대도 꽃밭이다.

고백하건데, ‘에코 아일랜드’라는 나로서는 도무지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놓고 연대도 주민들과 옥신각신할 때만 해도 나는 그가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인 줄로만 알았다. 그 뒤로 태양광이다 풍력이다 탄소 제로 섬이다 봉사 코끼리 만지는 듯한 이야기가 떠돌고 환경과니 도시과니 외주업체니 일이 되니 마니 골치가 아파지는 데에도 그는 연대도 묵정밭을 파헤치고 꽃씨부터 뿌렸다. 자칫 탄소 제로가 아니라 에코 아일랜드 사업자체가 제로가 될 뻔한 상황에서도 그는 아랑곳않고 연대도 주민들과 꽃밭을 일궜고, 그 과정에서 점차 그 자신이 연대도 주민이 되어 갔다. ‘저 조그마한 여자 혼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반신반의 하던 주민들도 싹이 트고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면서 그녀를 희망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밥은 먹고 오나, 회 좀 떠줄까 살가운 이웃이 된 것은 물론이고, 어렵사리 첫 꽃이 피자마자 새 손주 보듯 달떠서 가쁜 소리로 윤국장에게 전화를 넣은 것도 연대도 주민들이었다. 요사이엔 꽃밭 가꾸는 데 동네 주민들이 먼저 나서 밭두렁에 꼴을 베어야 겠다, 쑥을 쏙아 내야겠다, 물길을 대야겠다 등 온갖 꾀를 먼저 내어놓을 정도다. 그는 시작과 끝을 먼저 따져보는 것이 아니라, 이 하나 하나의 과정을 이뤄나가는 데 더 큰 의미를 두는 것만 같다. 내 시선이 그 과정을 찬찬히 훑을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한 행운이요 행복이다. 아주 오랜만의 포스팅을 연대도 꽃밭을 일굴 때부터 첫 관광객이 찾을 때까지의 순간들로 대신한다. 이토록 큰 배움을 혼자서만 즐기기 아까워서이기도 하고, 모처럼 다시 시작한 블로깅이니 의미가 큰 것을 담고 싶은 때문이기도 하다.

연대도에서 그와의 첫 만남은 아마도 작년 여름 RCE '조개섬 캠프'에서 였을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염생식물을 가르칠 때조차도 동네 꼬마 다루듯 친근하고 밝다.

에코 아일랜드 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주민들 의견이 모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가서 주민들을 설득하고 있는 윤국장(오른쪽). 돈 안되는 데다가 귀찮고 어려운 일은 안하고 마는 나로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위 사진과 분명 다른 날인데 어째 옷이 똑같으네~

작년 가을, 연대도 묵정밭을 고르는 첫 삽,이 아닌 첫 포크레인. 이 때만 해도 '그래서 뭐하려구요?'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머리에 상처를 입고도 연대도를 찾아 포그레인이 갈고 난 밭에서 돌을 고르고 있다.

푸른통영21의 위관옥 관사와 주민들도 합세했다. 사실상 주민들은 첫 아르바이트라는 생각에 꽃밭이야 되도 그만 안되도 그만이라는 맘도 실렸을 것이다.

몸빼를 입어도 어색할 게 전혀 없는 그도 등짝에 천이 없는 원피스를 입고 활보하던 아가씨였다. 밭일을 즐겨하지만 패션 감각이 대담하면서도 세련된 그 역시도 '여자는 여자이다'.

새잎이 돋는지 발아 상태를 확인하러 온 날. 빼꼼 잎을 내민 꽃양귀비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연대도 배움마실 선생님들과 어촌계장님 댁에서 냉이 된장국을 먹고 있다. 자기집 부엌인냥 넉살도 좋게 이것저것 들추더니 직접 캐온 냉이를 넣고 맛있게도 끓여냈다.


"섬에 살다보면 가끔 기름기 있는 음식이 땡기는 기라". 연대도 갈 때는 얻을 먹을 궁리보다는 배풀 궁리를 더 바삐한다. 시내에서 항정살을 사서 연대도 이장님댁 마당에서 주민들과 함께 구워먹고 있다.

광대풀밭에서 부녀회장과 함께 잡초를 속아내는 모습이 밀레의 '이삭 줍기'를 떠올리게 한다.



언듯 술에 취한 듯하지만 바닷바람을 피해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바람에도 추위를 타는 연약한 그이지만 일하는 모습을 보면 댓병 깡술에도 취하지 않을 것처럼 오똑하다.

연대도 주민들의 안면도 꽃 박람에 구경에 따라 나선 윤국장. 태양열 연구소 코스를 곁들이며 환경과의 지원을 얻어내 교육과 친목, 그리고 협력이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꾀와 추진력에 혼자서 감복했었다.

파종 후 제일 먼저, 그것도 혼자서 피어난 첫 꽃양귀비. 어촌계장의 전화를 받고선 바삐 가자던 전화가 아직도 귀를 울린다.

위 꽃을 제외하면 꽃양귀비 밭 어디에도 꽃은 아직 없다.

같은 날 찍은 안개꽃이다. 여기에도 이놈들 외엔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꽃이 피었다고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밭을 고르는 아낙네들에게 의료보험비 영수증 잔심부름까지도 한다. "내가 연대도 어촌계 간사냐?"고 말로만 투덜댈 뿐 나서서 돕는 일이 더 많다.

어버이날. 할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리는 뭍의 손녀. 첫 카네이션처럼 붉은 꽃양귀비를 봐서 그런가? 윤국장이 일구는 꽃밭은 그곳을 찾는 이들의 가슴에 고스란히 필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이게 누구 똥일까? 더구리 아니면 족제비 똥 같다며 그것을 손으로 슥슥 으깰 뿐 아니라 코에 대고 킁킁 냄새까지 맡는다. 이에 대면 생태와 자연을 향하는 내 내공은 택두없다는 것을 실감했다.

"연대도에 꽃이 만장같이 폈단다. 니부터 좀 가보고 온나". 마음이야 한달음이지만 다른 중요한 일정이 있어 울산으로 가야 한다며 내게 꽃심부름을 시켰다. 덕분에 만개한 꽃밭을 확인한 최초의 뭍놈이 되었다.
윤국장과 동갑내기 친구인 분과 첫꽃을 본 이후 더욱 열정적으로 꽃밭에 매달리는 어촌계장님. 그리고 앞의 아이는 바로...

말썽쟁이 우리 조카다. 꽃밭이 너무 좋다고 난리더니 1시간도 안 돼 집에 가자고 성화였다. 아이는 못말려~

사나흘 휴가를 나온 연대도 주민의 딸과 사위, 그리고 손주도 기념으로 한 컷 했다. 이틀이나 있으면서도 연대도에 꽃 핀 것을 모르고 있었단다. 부모님도 같이 찍자고 권했더니 옷갈아 입기 싫다며 손을 저으셨다. 꽃밭에서 무슨 옷자랑할 것도 아니고 -.-

이러니 꽃밭을 보는 이마다 탄성을 아니 지를 수 없다.

산에서, 이토록 자연적인 환경에서 이런 꽃밭은 둘도 없을 것이다. 그것도 바다가 보이는 꽃밭 말이다.


다음 주도 아니고, 다음 날 바로 우리 가족들이 연대도를 찾았다. 조카를 찍어온 사진을 보더니 당장 바로 가보자는 것이다. 이른 일곱의 노모도 꽃밭에 오더니 "하이구 좋아라~"를 연발하신다. 어머니 저렇게 웃으시는 모습, 무척이나 오랜만이다. 어쨌거나 우리 가족들이 최초의 관광객이 된 셈이다.

꽃자랑을 했더니 윤국장은 다음 주에 당장 서방님과 친동생(과 다름없는)을 모시고 연대도를 찾았다. 형님의 셔터가 아니 바쁠 리가 있겠는가.

자신이 일군 꽃밭에, 그것도 2천평이나 되는 곳에 앉은 소회는 어떤 것일까?

아내가 험한 소리 들어가며, 눈물 떨궈가며 똥고집으로 일군 꽃밭의 풍경은 또 어떻게 다가올까?


폐교된 조양분교를 섬 캠프로 리모델링 하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다. 없는 예산 박박 긁어도 쉽지 않은 일도, 결정만 하고 나면 일단 달리고 본다.
그러고 또 꽃밭에 나가 이제는 친구가 되다시피한 아낙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붙임성이나 정들기 같은 게 게 천성적인 거라면 나로선 그가 정말 부러울 뿐이다.

폐교 앞 꽃 밭에 고개를 내민 수레국화. 꽃양귀비와 안개꽃은 서막에 불과하다는 듯 화려한 빛깔을 자랑하고 있다. 이러니 자꾸만 연대도를 아니갈 수 있나.

"단체 사진 하나 찍어주라"는 그의 말에는 그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진심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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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사진과 함께 읽어 내려갈수록 돋아나는 소름과 전율.
‘아, 나도 저 꽃밭 속에 서고 싶다.’
마음은 이미 연대도에 가 있습니다.
그림 속에서나 흐드러지게 핀 양귀비를 보았는데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단 말이지요?
그런데 양귀비꽃은 얼마나 피어있나요?
진작 포스팅 안하신 것 윤미숙 국장을 비롯한 여러분의 노고와
인호씨 글솜씨, 사진 솜씨로 덮어드리기로 했으나
지천의 양귀비가 이미 져 날 반길 수 없다면
이유 불문하고 늦게 포스팅한 인호씨 내 용서 안할랍니다.
posted by 바람흔적 at 2009/06/11 04:02 REPLY MODIFY / DELETE
머 정신머리 도통 없었던 것으로 이해해 주시고, 꽃은 여즉 피었고 여름에는 또 수레국화 만발할 겁니다.
posted by  바다里 at 2009/06/11 09:38  MODIFY / DELETE
아직 꽃 안졋겠제?
주말에 갈까?
꽃보러가자고 마누라 꼬셔서
소주도 한잔 하고싶고
나야머 꽃보단 소주가조치만...
posted by 주여리 at 2009/06/11 09:31 REPLY MODIFY / DELETE
꽃은 안즉 잘 있다. 소주도^^
posted by  바다里 at 2009/06/11 09:39  MODIFY / DELETE
윤 이야...우짜몬 좋노. 밑에 뭐 안지워 진다 카는 댓글 지워준다 카다가 이야의 그 귀중한 말씀까지 다 지와삣습니다. 하긴 이 시각에 말짱하면 제가 아니지요. 다시 좀 달아 줄 수 있는지요? ㅠ.ㅠ
은다!
posted by 얼~~~ 왈왈왈 at 2009/06/13 15:41 REPLY MODIFY / DELETE
안녕하세요 조양 국민학교 다녔던 학생입니다

사진에 저희 할머니 작은아버지 아시는분 상당수 나와있네요 ㅎㅎㅎ

사진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서철웅 at 2009/12/28 10:56 REPLY MODIFY / DELETE
추억이 새록새록 하시겠네요. 가끔 오셔서 자주 뵈세요^^
posted by  바다里 at 2010/01/19 13:35  MODIFY / DELE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