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의 할마시가 오시던 내촌마을
바다의 땅 2009/10/15 18:23비바람의 할머니가 오시던 내촌마을

“내촌은 지금 벌써 공사가 들어갔습니다. 거기부터 갑시다.”
조선소와 가스공사 등이 들어서는 안정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뒤로 사라져 가는 마을 풍경을 사진으로 나마 남겨두기로 했을 때, 내촌은 0 순위에 꼽혔다. “내촌이 급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마을이 무슨 응급 환자도 아니고, 급하면 얼마나 급할까?’ 싶은 마음이었지만 막상 내촌에 발을 딛고 보니 이미 늦었다는 후회가 가장 먼저 닿았다. “1년만 빨리 왔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일행들의 탄식을 들으며 필자는 제발 내촌의 흔적만이라도 남았길 바랄 뿐이었다. 그만큼 내촌의 첫인상은 을씨년스러웠다. 날씨도 풍경도 마음도.


시금치가 달던 마을 


내촌천 물이 좋아 시금치 맛이 일품이었다고
아무도 살지 않을 것만 같은 마을에서 네 어르신을 만났다. 보상 합의를 하지 못해 그저 버텨보는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모두 시금치를 다듬고 있었다. 광도면 시금치 맛은 전국에서도 알아준다지만 내촌에선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수확이 될 지도 모른다. 한 단 300원, 하루 꼬박 묶어봐야 40단 정도의 푼돈이긴 해도 시금치밭이라도 있어 소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촌천 물이 좋아 다른 데보다도 내촌 시금치가 특히 맛있었지. 저기 마을 한 가운데 물이 흐르고 빨래터도 안 있더나? 거기서 도깨비도 봤다던데”
예촌의 마지막 이장댁은 내촌천과 빨래터 이야기를 하다말고 도깨비 이야기로 빠져든다. 할막제를 지내려고 첫물을 뜨려는데 누가 물을 좀 달라고 해서 줬더니 자꾸 물을 흘리면서 더 달라고 하더라는 것이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돌아보니 부리에 물을 가득 채운 도깨비가 “내가 아래 턱이 없는데” 하면서 히죽 웃더란다. 일행은 도깨비도 도깨비지만 할막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비바람으로부터 평온을 바라던 바닷가 마을
할막제를 지낼 때는 내촌천 맑은 물을 이 빨래터에서 떴는데, 거기서 아래턱이 없는 도깨비가 나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음력 2월 초하루가 되면 깨끗한 물을 떠서 부뚜막에 두는 거야. 바람도 막고 집안 태평하게 잘 넘어가고 하는 거지. 제사 음식처럼 나물하고 고기도 하고, 빨간색이든 노란색이든 파란색이든 여튼 3가지 색 천 쪼가리를 묶어서 목욕하는 데에다 뒀지. 귀신 막는다고 빨간 황토도 여기저기 뿌리고. 그게 19일까지 세 번을 하는데 일주일 있다가 하는 사람도 있고 5일 있다가 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 내가 시집을 오니 우리 시어머니가 남들이 떠기 전에 깨끗한 물을 떠오라고 해서 새벽에 그 빨래터를 갔다가 도깨비 이야기가 도무지 무서워서 해가 뜨고 나면 살짝 나가고 그렇게도 했어”
그러니까 할막제는 풍신제의 하나다. 바람을 관장하는 할머니신이 음력 2월 1일에 내려오는데, 며느리를 데리고 오면 비바람이 불고, 딸을 데려오면 일기가 평온하다는 설이 있다. 고부 관계의 불화와 갈등을 비유한 것이다. 이런 풍신제는 동해와 제주도 지방에 많이 남아 있는데, 내촌에선 작년에도 할막제를 지내는 집이 많았다고 한다. 이 기간엔 어부들은 출어를 삼가고 일을 쉬기도 한다니 새삼 내촌이 바닷가 마을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대목이다. 그 바다를 매립해서 조선소를 세우면서 어촌의 흔적도 묻혀버리고 만 것이다.
똥돼지가 살을 찌우던 변소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걸어놓은 이 집은 어디 한 군데 소홀히 볼 데가 없을 정도로 눈에 차는 것이 많다.)
시렁 위의 시계처럼 이 집도 시간이 멈춰진 듯하다

오래된 마루 만큼 아늑한 소파가 있던가. 할머니 손등 같은 낡은 마루에 앉으면 나는철부지 아이가 되는 기분이다

제주도에서만 있는 줄 알았던 똥돼지 변소를 본 일행들은 눈의 휘둥그래졌다

집과 돌담길이 너무 운치가 있다고 하니, 조선소에서도 이 집과 돌담 만큼은 휴식 공간으로 쓸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고 한다
일행들의 카메라 세례를 가장 많이 누른 것은 변소였다.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던 똥돼지가, 똥돼지를 키우던 변소가 통영 하고도 내촌에 있었을 거란 생각을 누가 해볼 수 있었을까. 우리는 주인의 똥을 받아먹고 살던 돼지가 언제까지 살았는지, 그 색깔과 맛은 또 어땠을지 이리저리 이야기를 맞춰보다 그 똥돼지 변소만큼이나 정겨운 돌담길을 걸어 나왔다.
당산나무와 석빙고를 어찌할꼬~
내촌 사람들은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는 이 당산나무를 새 둥지로 옮기고 싶지만 별다른 묘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고구마를 보관하려고 지었다는 이 석빙고의 길이는 4m30cm나 된다
내촌엔 명물이라고 할 만한 게 두 개 더 있다. 당산나무와 석빙고이다. 다른 동네 같으면 당산나무가 다 팽나무 아니면 느티나무이기 마련인데, 내촌의 당산나무는 소나무인 데다 그 품새가 그야말로 위풍당당이다. 이장님 이야기를 들으니 용이 발톱을 세우고 날아가는 형상이란다. 그 둘레를 재어보니 그 둘레가 1m70cm나 되고 높이는 4m에 이른다. 이런 당산나무에 얽힌 이야기가 왜 없겠는가.
“섣달 그믐날 제를 지내는 소나무였지, 절을 받는 나무였단 말이지. 그런데 거기 땅 주인이 자기 나무이니깐 제를 지내지 말라는 해서 우리가 도리가 있나. 그게 개인 껀지 국가 껀지 이리저리 알아보다 세월만 보냈는데, 제를 안 지내니까 그 땅 주인 아들이 시름시름 앓고 그 집에 우한이 드는 거야. 나중에 그게 국가 땅이라는 게 밝혀지고 다시 제를 지내게 되니까 그 집의 우한도 싹 없어졌지”
김윤근 이장은 지난 이야기야 재미삼아서라도 하겠지만 이 나무를 옮길 일이 더 걱정이다. 임중 내촌마을 이주단지로 옮겼으면 하는데 파내도 탈이 없을지, 또 어떻게 파낼지 도통 시원한 방법이 찾아지지가 않아서다.
김창식이라는 농부가 고구마 등을 보관하려고 만든 석빙고는 입구의 문 높이가 1m40cm, 폭이 70cm에 불과하지만 그 안에 꾸불꾸불 뚫린 굴의 길이가 4m30cm, 높이는 1m90cm나 된다.
“한 30년쯤 됐나. 시간 나면 좀 파다가 밭일 있으면 또 달려 나가고 좀 파다가 또 농사 짓고 한 1년 반이나 그러다가 다 팠었지. 주인이 한 3년 전에 세상을 버렸으니 그 내막이야 아무도 모르는 일이고.”
사라져 가는 마을은 집과 밭만 아니라 문화적 자산도 고스란히 사라진다. 사진과 기록이 모자란 것에 대한 아쉬움은 그대서 더욱 커진다. 이 석빙고만 하더라도 그 기법이나 기술을 배울 길이 없어진 것이 아닌가.
마지막 동회의 씁쓸함

내촌의 마지막 동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씁쓸한 술잔을 나누고 있다. 아쉬움을 나누고 달래려는 참석자가 너무 많아 회관 바깥에까지 상을 차려야 할 정도였다

마지막 동회를 마친 내촌 사람들이 임시 거주지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