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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알록아~ (3) 

안녕, 알록아~

홀로 아리랑 2009/11/26 16:35

안수 누나가 동피랑으로 이사를 오면서 고양이 모녀를 데리고 왔다. 에미는 알록이, 새끼는 노랑이. 원래 거제도 윤 이야가 키우던 고양이라 사람을 지 친구마냥 대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모녀가 쌍으로 우리집 앞을 기웃대는 것도 모자라 보란 듯이 창틀에 올라 먹을 것 없냐고 울어대기가 일쑤였다. 특히나 알록이는 잠시잠깐 문이라도 열렸다 싶으면 거실 탁자 밑에 잽싸게 자리를 잡고 누워 강제로 끌어내기 전에는 꼼짝도 않는 넉살을 과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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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알록이가 또 새끼를 쳤다. 여섯 마리 중 한 마리는 나오자마자 죽었고, 한 마리는 시샘 많은 노랑이가 깔고 자는 바람에 땅속으로 다시 묻었다. 안 되겠다 싶어 노랑이를 윤 이야가 다시 거제도로 데려가자마자 알록이가 사라졌다. 안수 이야는 새끼들 두고 어딜 싸돌아 다니냐고 툴툴 걱정을 늘어놓으며 젖병을 물려 우유를 먹이기 시작했지만,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한 놈씩 차례로 눈을 감았다.

애타게 에미를 기다리던 새끼들이 모두 떠나고 사나흘이 지났나, 알록이가 돌아왔다. 어찌된 영문인지 목이 잠겨 울지도 못하는 데다, 사람 눈치를 이리저리 보며 함부로 끼어들지 않는 것이 어디서 호되게 당하고 온 모양이다. 회라도 사들고 오면 ‘나는 와 안 주노’ 하며 염치도 없이 하두 울어대서 짜증까지 치밀던 그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온데 간데 없고, 표정도 ‘제발 저도 좀 주시면 안 될까요’ 하는 쪽으로 주눅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다.

우는 소리가 나야 밥을 주든 말든 할 텐데, 녀석이 소리를 낼 수 없으니 내쪽에서 자꾸만 창문너머를 살피게 된다. 마구잡이로 울어재낄 때 만큼이나 이 또한 성가시기는 마찬가지지만 마음은 되려 사고 이후로 훨씬 많이 쓰이고 애잔하다. 불청객이었던 놈이 어느새 길가에 내놓은 아이가 되고 만 것이다.

안수 누나가 일본으로 출장을 가면서 알록이를 부탁했다. 전에는 출장이 있어도 알아서 잘 먹는다고 하고 신경쓰지 말라더니 이번엔 하루 한 끼만이라도 챙겨 달라고 하고 갔다. 하루 전엔 “새끼 전부 다 잃었지, 험한 꼴 당했지... 지가 무슨 기를 펴고 살겠노” 중얼거리기도 했다. 성가시게 굴 땐 밉상이 더 많이 보이다가도 자기 의사조차 표현 못할 정도가 되고 나면 측은지심이 드는 것은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르지가 않다. 창 너머로 알록이를 기다리던 마음이 내친김에 옛 사람에게로 달음박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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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할머니들

섬 섬 섬 2009/11/23 18:02

<씨네 21>에서 읽었던가. 글을 아는 즐거움 중 최고로 음식 메뉴를 고를 때와 시를 읽을 때라고 꼽은 것을.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면 글을 모르는 여주인공은 데이트할 때마다 남자와 같은 것을 주문하며 자신의 무식이 들통나는 것을 순간순간 모면하지만, 결국 ‘빨래집게 놓고 A자도 모르는’ 일자무식 때문에 극악무도한 나찌의 앞장이로 몰리고 옥중자결에 이르게까지 된다. 업무에 충실하게 나찌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그게 왜 잘못이냐고 반문하는 여주인공의 표정을 보노라면 무지의 안쪽에 파인 위험의 구덩이가 얼마나 크고 깊은 것인지 치가 떨릴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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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배움마실을 처음 열었을 때만해도 할머니들은 학교를 다녀보지 못했거나 다니다 만 과거, 그래서 기역 니은 조차 모른다는 것을 부끄러워했고, 할버지들은 이런 할머니들을 뒤늦게 타박하기도 했다. 더 놀라운 것은 여지껏 살 맞대고 살아온 할머니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내신 분들이 적지 않더라는 것이다. “아니 할매가 여태 글자도 모르고 살았나?” 할 때의 할아버지 표정에선 무관심과 무지의 경계가 결코 다르지 않았었다.

“큰 글자는 다 읽으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사기당하는 건 아닌지 종이만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는데 인자 그렇지는 않아”
“배표(승선권)고 자루고 간에 내 이름 석 자 내 손으로 안 쓰나”

9개월 간의 배움마실에서 한글을 깨우친 할머니들의 말씀이다. 글자이겠지 하고 흘겨보기만 했던 마을회관 바로 옆의 ‘비치모텔’이라는 간판을 소리 내어 읽으시고, 택배든 우편물이든 서명할 때마다 꾀림칙하던 마음이 달아났고, 당신이 직접 쓰는 뿌듯함을 놓치고 싶지 않아 매표원이 대신 써준다는 걸 한사코 마다한다는 것이다. 몰랐을 땐 몰랐던 못 배웠던 설움이 글자라도 알고 나니 더 막급한 회한으로 다가온다고도 하신다. “할배가 뭐라고 씨부리든 말든 나는 고마 귀 틀어막고 공부하”는 데는 이런 까닭이 진하게 녹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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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0일. 방학을 앞두고 사량도 배움마실을 찾아 기념사진이라도 찍을 겸 할머니들과 함께 내지마을 안못개 벽화 골목을 찾았다. 사량도 안에 있다 하더라도 왕래가 드물어 이웃소식이 어두운 데다, 그렇게 해서라도 억지로 모시지 않으면 또 언제 벽화골목 나들이를 나서실까 해서다. 동시와 동화가 어우러진 안못개 벽화골목은 내가 사는 동피랑과는 또 다른 맛이 넘쳐서 내 카메라가 부지런을 떨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분주한 것은 할머니들의 발걸음이었다. 벽화마다 써진 동시를 하나하나 다 읽으며 배운 기쁨을 한껏 누리시던 것이다.

"산 너머 저쪽엔 별똥이 많겠지/밤마다 서너개씩 떨어졌으니/산 너머 저쪽엔 바다가 있겠지/여름내 은하수가 흘러 갔으니”

그림은 눈에도 아니 차는 듯 벽화에 곁들인 동시들만 찾아 한 음 한 음 소리내어 읽으시며 할머니들은 “하이구 좋아라, 내 이런 날이 올 줄 어떻게 알았것노” 하시는데, 시를 음미하는 것보다 더 원초적인, 글자를 읽는 쾌감을 주체하지 못하고 달뜬 모습이 앙증맞기까지 했다.

다음날, 할머니들은 배움마실이 열리는 대항마을에도 벽에 글자를 써 달라고 졸랐다. 오며가며 그것을 읽으면 공부할 맛도 더 날 것이고, 숙제하는 것보다도 훨씬 재미있을 것이라는 응석을 섞어서. 한 가지 숙제를 재미삼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하느라 팔이 아프다고 호소하는 바람에 선생님이 오히려 ‘숙제는 한 번만!’을 강조해오던 터였다.

“벽에 쓰는 건 아무 글이든 괜찮다. 우리는 고마 읽을 거리만 있으면 된다”는 말씀에는 관광객 유치라거나 마을 가꾸기라거나 하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게 오직 읽는 즐거움, “살아서는 인자 이거밖에는 낙이 없”을 정도로 재미가 넘치는 한글 배우기를 더 누리고 싶다는 바람만이 가득 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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