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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 감독, 고향 친구를 만나다

사람 사람들 2008/03/30 12:15

반갑다, 친구야!
16기 통고 선배들이 풀어놓는 통영 이야기, 사는 이야기

<구름다리>는 박경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 김호 대전시티전 감독, 유광언 전 정무차관, 박영부 한산신문 서울지사장을  모셨다. 당초 서울에서 뵙기로 했지만 16기들 모이는 데 김호 감독님이 없으면 이야기가 안 된다는 선배님들의 꾀병(?)에 날짜를 늦춰 2월 12일 통영에서 자리를 마련했다. 서울에 계시는 세 분 선배님들은 김호 감독님을 바쁜 일정 탓에 가장 오랜만에 보는 자리라 자연스럽게 김호 감독님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렀다. 지면에서 김호 감독님 이야기가 많은 것도 같은 까닭이다. 축구와 고향, 정치 이야기가 어우러져 무척 흥미진진했고, 무엇보다 그 자리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어려운 자리에 나와주신 네 분 선배님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린다.  선기화와 추인호가 듣고 적은 것을 서로 들춰가며 정리한 것이라 말의 순서는 실제 그 자리와 조금 다를 수 있다.


간단 프로필 왼쪽부터

박영부 한산신문 서울 지국장, 포천 <하예성 사랑의 집> 운영위원장이다. 오랜 동안 동창회 사무국장을 하면서 늘상 굳은 일과 성가신 일을 소리없이 도운다.

유광언 고려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YS시절 정무차관으로 있으면서 통영인의 기개로 공무원 기강을 단단히 잡았다. 평생 장준하 선생의 유훈을 받들어 <장준하 기념사업회> 운영위원장을 맡았고 시민단체 <한국의 빛> 대표다.

김호 대전씨티즌 감독을 맡고 있다. 국가대표선수로 8년을 뛰었고 국가대표팀 감독과 프로팀 감독 등 지도자로 31년이니 52년 동안 축구와 인연을 맺었다. 감독이 삼성 프로축구단 팀을 떠나던 날 선수들은 <스승의 은혜>를 합창했다고 한다.

박경조 대한성공회 서울교구장, 녹색연합 공동대표, KNCC(한국기독교회협의회) 대표. 사학법 개정 관련하여 극한 갈등으로 치달을 때, 이 땅의 지도자가 무엇을 해야하는지 또렷이 보여주었다.


박영부 여기 친구들이 모두 5개 초등학교 축구시합의 멤버 아닌가.

김호 일전에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공찰 때 와 본 적이 있다. 그 중에 한 친구는 내가 불러서 축구를 한 번 해보라고 했고 성공에 대한 그림도 그려지던데 결국 부모가 반대하니깐 안되더라.


박영부
오랫동안 통영에 머물며 통영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김호 통영이 아직은 생각이 못 미친다고 말하고 싶다. 세계의 많은 곳을 돌아다녔지만 자연과 기후가 통영보다 좋은 곳은 없다. 관광지가 아니라 휴양지로 거듭나는 전략을 짜야 한다. 러브 모텔식 건물이 아니라 집처럼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곳들이 많아야 한다. 휴양지에서 오래 머물게 만들어야 한다. 관광 목적으로는 통영에 두 번 오기도 힘들다. 시청에다 같이 모여 세미나도 하고 공부를 해보자했는데, 일할 사람도 없고 잘 들으려 않더라.

박경조 전지훈련장으로는 어떤가?

김호 거제에 특급호텔이 있어 고려했지만, 거제 물가는 바가지 중의 바가지다. 거제는 연습장까지의 이동거리가 많아 효율적이지 않다. 여기 통영이 천혜의 장소다. 50명이 한 달 머물고 가는 것이니 통영 경제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통영에 연습장을 짓는다면 프로팀이 독립된 공간에서 자신들만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으로 꾸미고, 6개 구장을 가격으로 차별화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일본 미야자끼현 그 허허벌판, 남태평양에서 불어 오는 바람도 심한데 그곳에 나무를 심어 연습장을 만들어 내더라. 그리고는 철저히 가격을 차별화시키더라.  관광도 1일 티켓이라든가, 1년 단위 교통티켓 등 여러 방법을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유광언 나는 시장에게 국장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제발 가서 보고 배워와라는 주문을 한다. 공무원 30%는 주요 대기업과 교환하여 근무시키는 것도 방법이다.

김호 맞는 이야기다. 축구계도 아무리 혁명을 이야기 한다고 해도 안 바뀐다.

유광언 지금 들어서는 정부의 인선도 교수, 변호사가 공무원을 이길 수가 없다. 그들은 공무원 생활 이후에도 정부와의 거래를 염두에 둔다. 그래서 심하게 하지 못한다. 공무원이 상전이기 때문이다.

박경조 보기에 요즘 애들은 어떤가?

김호 잘 넘어진다. 운동 부족이다. 달리기를 안 하니 심장이 안 좋아 진다.

유광언 옛날에 친구가 환경오염이 심각해지고 물이 더러워질 거니까 온 국민이 위장병 환자가 될거라 했다. 그래서 위장약 장사를 하면 잘 될 것이라고 해서 웃었더니만 그게 괜한 소리가 아닌 게 되고 있다.

김호 며칠 전 문제가 된 운동선수 병역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은 운동선수가 꼭 그 나이에 군대를 가야만 하냐는 아니다. 박지성을 예로 들어도 박지성이 세계축구계에서 뛰다 온 시간 만큼 나중에 나이들어 다르게 기여할 길이 얼마든지 있지 않나. 모두를 반 강제적으로 군대에 가라고 해놓고 사정상 못가는 사람 모두를 범죄자로 만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유광언 법률을 보는 시각이 꼭 지키라고 만드는 법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지켜지기만 했으면 박정희 시절에도 노동자의 천국이었을 것이다. 세상의 컨센석스에 맞는 법이어야 한다. 오세훈이 만든 정치개혁법 또한 교통법규와 똑 같은 거다. 안 보면 다 어기는 그런 법률이다.

박영부 우리 때는 A팀 B팀 있었는데, 나는 B팀으로 뛰었다. 김 감독은 축구를 어떻게 시작했나?

김호 처음에는 육상을 했다. 어머니가 군청을 다니셨는데, 참 개화가 되신 분이었던 것 같다. 재능을 인정해주는 그런 부모가 감사하다. 통영사람은 축구를 잘 할 수 있는 거친 기질이 있다. 통영, 충렬, 유영, 두룡, 진남 정기전을 하던 기억도 생생하다. 우리는 배우진 못했지만 야망은 있었다. 재능을 인정받았기에 서울로 진출할 수 있었다. 제일모직으로 갔는데 그때 실업팀은 대한중석, 석탄공사, 양지 4개팀 정도였다. 고등학교 때 때거리가 없어 고민했는데, 제일모직 오라니까 고맙게 갔다.

유광언 그땐 누구나 어려웠다. 조홍규(전남 정치인)가 나에게 한 이야기는 “우린 모두 거지였다”. 고무신 신고 학교다니고, 집이 없어 대학교에서 자고 아침에 수도가에서 세수하고, 그러니 하교가 없었다. 저녁되면 학교 앞 술집을 쭉 순례하고, 거지 셋이서 그렇게 지냈다. 유도부를 했는데, 유도 도복으로 잠자리를 깔고, 그렇게 잤다.
내가 학교 들어가니까, 부산고 나오고 연대 들어간 탁종민이 우리학교(고대) 소문을 내놓기를 “깡패가 왔다”고 했더라.(웃음) 우리과에는 서울, 대전 사람들이 많았다. 구자본 교수의 교양국어 시간에 입학소감을 물어 보는데, 누가 뒤에서 ‘새끼’라는 말이 나오길래 내가 그 친구 멱살을 바로 잡고는 정신차리게 해주었다.

박영부 대학하고 사는 것하고는 많이 다르더라.

유광언 김성수 주교도 배재고등학교가 낳은 깡패였는데, 진짜 공부라고는 안 했다. 성직자가 공부로 하는게 아니다. 우리는 이제  책을 보려고 해도 잘 안 보인다. 박주교도 신부가 된 건 참 사연이 있다. 당시 비철금속 굴지의 기업인 영풍이란 데를 입사했는데 강릉이고, 속초고 출장을 가면 그 업체는 전도금 받는 업체들이라 본사 직원 출장 오면 향응이 당시로서는 엄청났다. 여관에 들어가면 여자까지 넣어줬을 정도니까. “세상이 엉터리다” 뱉더니 어느날 신부가 된다고 하더라.

박경조 한국 성공회는 강화도나 충청도가 출발이었는데, 강화도 사람들이 그러더라. 어떻게 내가 리더가 되었나 이상하다고 한다.

박영부 나는 통영사람의 좋은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축구에서도 최고의 위치, 종교와 정치에서도 제대로 된 지도자로 성장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김호 통영 기질이 있는 것에 공감한다. 끈질기게 하다 보니까 된 것 같다. (축구계의 파벌 싸움은 이미 소문난 것이다. 대학팀을 나오지 않은 김호 감독은 정말 홀로 우뚝 섰다고 볼 수밖에 없다-편집자 주) 나는 나 혼자니깐 누구 비위맞추고 할 게 없었다. 거칠게 할 소리 다 하고 살았더니 여기까지 왔다.  

박경조 나는 영국과 스위스에서 공부를 했다. 거기서 버틴 것도 그런 기질 때문이 아닐까 한다.

유광언 나는 눈이 나빠서 공부는 안되더라.(웃음)

박경조 이번에 여기 와서 달아공원 등을 걸어서 돌아 다녀봤다.  은퇴하면 전국을 걸으며 돌아다니고 싶다. 오세훈 서울시장한테도 부탁했는데, 북한산을 가보면 그 길이 너무 파괴되어 있다. 옛길은 파괴되고, 서울시가 생각을 좀 갖고 길을 복원하는 노력을 기울이면 좋겠다.  여기 와서도 보면 아름답다고는 하나 정작 사람이 걸어다니는 길은 아닌 것 같다.  자전거 한 대 가기가 두려운 길이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길을 제대로 만들면 좋겠다. 내려 온다 하더라도 차타고 한 바퀴 휙 돌아갈 것이 아니라, 걸어서 자연을 제대로 느끼게 해주면 좋겠다.

김호 통영의 문제는 국가가 제한하고 있다. 도남동 충무관광호텔 언덕배기 위로 산악자전거를 타고 가면 미세하게 나 있는 길이 산양면 전체로 연결되는 것 같더라. 나는 강구안에 다리놓는 거 반대한다. ‘에어’로 다리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자연은 바라보는 그것으로 역할은 충분히 다 한다. 해운대, 다대포에 있는 다리는 수평선을 망쳐놓았다. 빨리 가야 할 길이 있으면 머물며 갈 길도 있어야 한다.

박경조 도시 사람은 빨리 가는 거라 생각하지만 먼저 죽는 거다.

유광언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3개 반밖이었지만 제법 서울로 많이 진출한 것은 6.25 전란 때라, 대학교수 할 수 있는 인재들이 통영 와서 가르친 때문이 아닌가 싶다.

김호 통영 아이들이 인재가 되도록 장학제도도 고민했는데, 통영사람이 오히려 배타적이더라. 축구도 그렇다. 지도자를 보낸다니까 오히려 따돌리더라. 가스공사에서 아이스링크 지어 준다는 것도 가스관 지나가면 아이스링크는 생기는 거 아닌가. 도우려는 사람이 가면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도리일텐데 ‘니가 통영에서 뭐했는데’하고 뺀다. 정해주 선배도 외지 사람인데 통영사람의 그런 심리를 이해를 못해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 머리를 쥐더라.  오스트리아에 가니까 지역에 들어온 외부기업의 경우, 매출이 나면 일정 기간 지역에 돈을 예치하여 그 지역에서 돈이 유통되도록 하는 제도가 있더라. 리조트, 버스 다 외지 사람들이 와서 한다. 와서 성공하면 지역에 환원하도록 하면 될 일 아닌가. 도시계획도 도심을 바깥으로 던져 놓으면 되는 것인가. 항남동을 광장으로 만들면 사람도 없어진다.

유광언 민선 시장은 아파트 허가 내주어 이권만 챙겼다. 온 세계를 돌아다녀 보아도 통영 거제 만큼 아름다운 곳은 없는데 그 경관을 아파트가 가로 막게 한다. 아파트 공사하는 업자들 말로는 건물 수명을 50년도 안 본다고 하더라. 나중에 또 재개발하겠거니 하는 거다. 그러니 안전은 둘째치고 해안도로니 주위 경관과의 조화같은 걸 신경이나 쓰겠나. 짓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거다.

김호 아파트 짓지 말라는 게 아니고 아파트 지을 데와 경치 살릴 데를 구분하자는 거다. 내 땅인데 고층빌딩 못짓게 하면 당연히 불만 있을 수밖에 없다. 대신 집을 테라스 형태로 짓는다든가 하면 지원금을 준다든가, 바닷가 살면 태풍이든 자연재해로 희생 당하는 것도 있으니 세금을 적게 내게 하는 방법도 있다.

유광언 내가 사는 북한산도 마찬가지다. 고도제한 받는다. 예전에 이명박 시장한테 찾아가서 “형이 이게 말이 되요, 북한산 전망권은 어디서 나와요?”했다. 고도제한이라는 고통을 받는 대신 강북 영어마을과 경전철을 받아왔다.  해오니까 단체장 자기가 다 한 거라 선전하더라.

김호 문제는 통영에 투자할 사람, 기업이 없다는 것이다. 기업인 돈을 끌어 오려면 미친 놈이 있어야 한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모두가 모여 뭉쳐도 될까 말까하는 하는데 어느 미친 놈이 통영에 돈을 대겠는가.  나랏일도 마찬가지다. 작은 것부터 하면 된다. 선거는 일을 잘 하면 따라온다. 이 원리를 거꾸로 봐선 안된다. 대통령도 미래를 보고 행정을 해야지 자신을 위한 행정을 하면 안된다.

유광언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표로 보니까 그렇다.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이 시장할 때 통영에 거북선은 잘 보냈다.(웃음)  통영시장이 거북선을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서울시장에게 편지를 참 잘 썼더라. 그때 서울시장은 시집 보내려면 꽃단장 잘 해서 보내는 것이라면서 거북선을 수리하고 군사분계선을 넘겨 멀리 예쁘게 보내왔다.

김호 미국이 왜 대단한 나라인가. 남의 나라에서 자기 국민 시체 1구라도 찾으려고 더 찾으려고 오만 일을 하지 않나. 그 정도는 해야 국민도 나라에, 나랏일에 팔 걷어부치고 나선다.

박영부 남대문에 불나는 것을 서울 투어 하다가 보았다.

유광언 아내가 대한민국 남자들은 다 짤라야 된다고 하더라.

김호 소방관이 노련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먼지가 틈사이에 쌓여 있어 물로 처리가 진화가 안되었을 것이다. 요즘 100층짜리 아파트 짓는다고 하는데 나는 섬뜩하다. 불나면 끌 수는 있나? 인간의 존엄성은 어떡하구 자꾸 건물만 높이려 드는 까닭을 모르겠다.

박영부 김감독은 선수 단련시키는 철학이 있나?

김호 야마모도 무사시라는 검객은 망나니를 절에 가둬서 생각하는 공부를 시켰다. 그는 집중력를 키우는 뛰어난 전략가인 것이다. 나는 선수들에게 “준비가 된 사람들은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혼’이라는 것도 준비하는 데서 비롯된다. 야마모두 무사시처럼 자다가도 적이 오면 검을 잡을 수 있어야 승산이 있지 않겠나. 축구 실력이 멈추는 이에게는 또는 축구만 아는 이에게는 축구를 시키지 않는다. 고수가 폭포에서 칼을 들고 물을 가르고 있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끝까지 벌이는 것이다. 내 말을 고종수가 알아먹었나 보다. 신발 정리부터 자신의 몸을 가누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준비되지 않은 행동이 없다. 그러니 요새 '부활' 어쩌구 하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박영부 할 수 있는 것을 분간해내는 것도 중요하다.

김호 할 일이  너무 많다.  사회의 여러 세력이 역할을 분담해서 잘 이끌어야 하는 것을 스포츠를 통해 배운다. 정치인이 사회에서 제 역할을 통합해 내기가 쉽지 않다. 영국의 뉴캐슬 프로팀은 시장이 나서서 전단을 돌려 준다. 체면 그런 것 문제가 아니다. 축구를 보면서 사회를 이야기 하고, 아이디어를 꺼낸다.
선진국은 IQ가 150을 넘어가는 이가 한 명있으면 100명을 먹여 살린다고 여긴다.  자신의 능력은 봉사로 이어 진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거다. 하지만 우리는 그 좋은 머리가 착취하는 데 쓰여진다. 세금 많이 내는 사람 대접해줘야 하고, 일이 안되는 때는 국가가 도와 주어야 한다.  우리는 국가가 부모라 생각해왔다.

유광언 대학을 왜 나왔나 되돌아보니 좋은 것은 100% 인맥이다. 괜찮은 놈 많이 만나는 것이다. 내가 다니던 시절 서울 친구들에 대면 통영사람에겐 문화가 부족하더라.  수학문제 푸는 건 똑 같아도 음악이나 연극 등 문화는 사람에게 다 다르게 전달된다. 미분적분을 고등학교 때 배워서 어디서 써먹나. 교육계의 밥그릇 때문에 배우지 않아도 될 것을 배운다. 정작 살아보니 미사여구보다는 본심으로 해야 한다는 걸 알겠다. 이게 감동도 주고, 뭉치게도 한다.

김호 나는 선수들에게 이기라고 하지 않는다. 배운대로 운동장에 옮기면 이겨진다고는 한다. 이길 수도 있고 질 수도 있지만 실수를 반복하지는 마라고 가르친다. 어차피 영원히 이기는 것이 아니다. 축구의 승부에 운이 90%나 따른다고 해도 열심히 해놓아야 운마저도 내 것이 되지 않겠냐고 한다. 그리곤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친다. 대통령이라고 해도 고향 오면 엿장수 하고라도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호야 술먹자’고 하면 아무라도 기꺼이 한잔 하려고 노력한다. 적지 않은 정치인이나 리더들이 능력만 가르치고 이걸 빠뜨린다.

박영부 <하예성 사랑의 집> 운영하면서 서정원 선수 도움 많이 받았다. 선수들끼리 돈을 모아서 직접 찾아 오기도 했다. 그냥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진심을 가지고 하더라. 김감독이 잘 가르친 것 같다.

유광언 만델라는 27년 옥살이를 하고서도 재물 욕심 없이 깨끗하게 살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걸 보면 집에 가져 놓으려 든다. 백기완선생도 장준하 선생 앞에서 ‘저 감나무 집에 가져다 놨으면 좋겠다’고 혼잣소리를 했다가 타박을 받았다. 많은 사람이 두고 봐야 하는 걸 왜 집에 가두냐고 했다. 더불어 사는 게 이처럼 쉽지만은 않다.

박경조 호야가 더불어 사는 법을 우선 가르친다고 하니 스트레스 많은 승부 세계에 있으면서도 그 여유가 종교의 경지까지 온 것 같다. 나도 남과 더불어 사라고 가르친다. 나이가 들어 보니 결국 이걸 배우고 또 배워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된다. 블랙박스가 기록을 찾을 수 있어 중요하다면 화이트박스(흰 머리, 경륜)는 경험과 노련함과 문화가 들어 중요한 것이다.

김호 아프리카 선수를 하나 데려왔더니 밤 12시에 일어나서 밥을 달라고 하더라. 아프리카 제 나라에선 먹을 게 널렸으니 배가 고프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잔다. 그러니까 아침 점심 저녁이라는 개념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여기선 때 놓치면 밥 먹기 어렵다고 했다. 선수들과 더불어 있지 못하고 따로 놀면 경기장에서도 잘 못 어울린다.  유럽에서 뛰는 아프리카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거기서도 전술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문화를 가르치는 게 우선이다. 이미 받은 몸값만으로도 자기나라에서 왕 대접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이 왜 유럽 축구 무대에서 생존경쟁을 벌이는가. 더 좋은 차와 더 좋은 집, 더 좋은 여자를 가지려는 욕심이 생기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문화생활을 즐기게 되어 그런 거다. 또 동료가 있으니 뛰는 거다. 좋은 선수는 희생을 잘 하는 선수라고 보는데, 희생은 마음이 먼저  닿아야 하는 것 아니겠나. 그러니 유럽에서 잘 뛰고 있는 박지성이가 대단하다고 하는 거다.

박영부 경쟁력을 갖춘다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김호 일본이 2030년 세계 최고에 도전한다. 우리가 배울게 많을 것이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선점해야 할 곳은 몽골이라고 본다. 거기에 투자해 우리 땅이나 마찬가지로 만들면 승산이 있다. 마찬가지 이유로 중국 조선족을 한국에 데려와 저임금 노동자로 만들 게 아니라 거기 안에서 성장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북에 쌀 보낸 것처럼 조선족을 키웠으면 중국 안에 우리 땅 있는 거와 진배 없지 않았나.

유광언 동북3성이 우리땅이라 생각하고 투자 해야 한다. 

김호 무엇을 하든 용기가 필요하다. 요즘 아이들은 달리질 않는다고 했다. 같이 모여서 뛰노는 친구가 없다는 말이다. 니편 내편 나눠서 치고받고 싸우고 해봐야 용기도 자란다. 아이와 운동할 짬이 없다면  손을 잡고 축구장에라도 오면 우리편 이겨라 응원할 테고 자기 팀이 죽어라 뛰는 데서 용기도 보게 된다. 나는 스포츠가 하는 또 하나의 역할이 이거라고 본다. 

                                                               -구름다리 편집부 선기화, 추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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