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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마>는 <정지>에 물을 <한거석> 받아 놓고

받아쓰기 2006/04/21 22:25
우리가 <애릴 때> 서울말은 동경의 대상이었다. 교과서에 표준말은 현재, 서울의, 중류사회에서, 상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이 또 시험에 나오면 집에서는 <밥무라> 라고 말을 하다가도 시험에는 ‘먹다’가 맞는 말이 라고 ( ) 속에 동그라미를 치곤 하였다. 이런 우리들은 서울말에 대한 아련한 추억의 파편들을 갖고 있다. 


우리 애일 때 통영에 두 <걸뱅이>가 있었다. 하나는 ‘낭까이’이다. 그는 밥을 주면 얻어가고 “밥없어”하면 슬금슬금 눈치보며 그냥 돌아서서 가고, 간혹 남의 것을 훔치기도 하는 거지다운 거지였다. 또다른 거지는 다마내기 거지. 그는 방한용 모자를 단정히 쓰고, 늘 빈틈없을 행동을 했다. 밥을 얻으려고 남의 집 문을 열고는 “밥 좀 주세요”하고 유창한 서울말을 했다. “밥 없어”하면 “밥이 없으면 반찬이라도 좀 주세요”하면서 조금도 물러지 않는 그런 <대라진> 서울내기 거지였다.


또다른 서울내기 얘기가 있다. 초등학교 때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가악중>에 한 <비리게이> 녀석을 데리고 들어오셨다. <가~아>는 아래는 곤색 윗도리에 흰 카라를 한, 척 보니 도시<몬찬>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은 서울에서 전학을 왔단다. 가만 보니 우리 반 <가수네>들은 벌써 그 다마내기 한테 가서 뭐라뭐라 하는 것이 <눈꼴이 시어서> 못 볼 지경이었다. 썽이 났다. 가~아는 <보리 가시랭이> 날리는 소리를 하는 데 맨날 <끄트머리>에 “...~세요”라는 말만 알아들었다. 반 아들이 배꼽을 잡고 웃어 재꼈다. 가~아는 공부시간만 되면 꽁도 안볶는다는데 <가똑디기>처럼 튀어나오길 잘하였다. 가~아는 선생님 사랑을 받았지만, 어느 날 산수 시험을 쳤는데 문제가 너무 <애럽웠는지> 그만 <꽁지바리>를 하니, 그 맛이 얼마나 <꼬신지> 아무도 <모릴끼라>.


비록 가~아가 <미알시럽게 > 굴긴 했으나 우리 집과 <개적은> <이우지>에 살았기 때문에 나가 맨날 같이 놀자고 가~아 집으로 갔다. 그 후 그는 토영놈이 다 되어, 당산 <몬딩>,<까꾸막>을 올라 가다가 <구부라지기도>했다. 때로는 <때갈도> <쌜>줄 알게 되고, 큰 놈과 <달구지게> 붙어 <시껍>을 한 일도 있다.


그 후 나는 어찌어찌하여 다른 재경 동문들처럼 서울로 왔다. 전차 간에서 <문디> <가수네>들은 말은 영 <시끄러벗다>. 다마내기들 하고 말을 해보니 옛날 그 추억 속의 다마내기와 영판 달리 사근사근했다. 그리하여 같이 살게 되었다. 그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말끼>는 고사하고, 말을 못 알아듣는 일이 자주 생겼다. 시어머니가 아이스박스를 <매매> 싸가지고 오시기도 하고, 손자 <꼬마딩이> <목간>도 시켰다. 한 번은 “<행갈> 물 좀 <각고오이라>” 하니 현관문을 잠그고 왔다. 하루는 <택도없는> 소리를 하여 내가 <썽>을 내며, “그것 참 하나 <보골감>은 됐네”하니 배시시 웃었다. 기가 막혀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했냐”고 되물으니, “보골이란 곳에서 감이 많이 난다고 했지요” 라고 하였다. 어느날 아~가 문 사이에 손이 <찡겨서> 우는데 어머니는 “저 아~가 <똑> <저가배 > <태기서> <어구팅이>를 지기며 운다고 <보듬어주라>” 하니 보리차 물을 먹이는 것이 아닌가.


이제 우리는 절반은 서울 사람이다. 옛날 통영에 사는 <옴마>는 <정지>에서 물을 <한거석> 받아 놓고 <그럭>씻은 물에 <행지삐> 빨고 난 후 길가에 물을 <억지러 버렸다>. 이제 우리는 주방에서 설거지에 행주를 들고 식탁까지 닦게 되었는데, 이제 마누라는 <앙조가리며> <앵기들이>는 것이 예사이니 이제는 살아주는 것만도 <오감은> 편이라. 앞으로 곧 손자 <뽈태기>를 비비도 보고, 그 녀석이 학교에 갔다오면 <배럭방>에 <항칠>하는 것도 볼 것이다.


우리는 고향사람을 만나면 잘 하던 서울 말을 버리고 통영말을 쓴다. 그것은 우리의 의사를 가장 잘 전달하는 방편이며, 또 우리 고향 사람의 동질성을 회복하는 가장 빠른 수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동기들끼리 모여 앉거나, 선후배 찾아 <히비고> <댕기면서> 아침부터 <정때까지> 통영 표준말을 맘껏 <씨부려> ‘우리’를 확인하기도 한다. 비록 <씨태나리장가는> 소리에, 우리 모두가 <씨석바리>가 될지라도.


정원표

17기. 홍익대 국문과 교수.

미륵산 10월호에 올린 것을 다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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