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금마을과 비진도, 그리고...
섬 섬 섬 2009/02/03 14:01여객터미널에 ‘대항’이라고 표기되어 있기에 ‘안 가본 섬이구나, 어떤 모습일까’ 하고 배에 올랐다가 우연찮게 김기자를 만났다. ‘대항’이 바로 4월에 갔던 대매물도라는 말을 듣곤 잠시 절망했으나 그때는 가보지 못한 당금마을로도 길이 이어진다니 배삯이 아깝지만은 않겠구나 했다.

대항에서 당금마을로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겨운 데다 바다의 여백이 많다. 두 마을의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길이라 그런지 두미도처럼 험하지 않다. 흙길이라 추도의 신작로와도 또 다른 맛이 있다. 지금 들먹이는 세 길은 시멘트로 만든 해안도로가 아니라 섬의 능선을 따라 난 흙길이라 먼 바다를 옆구리에 끼게 된다. 답답한 날, 혼잣소리를 아무렇게나 흥얼거리기에 딱 좋은 길들이다.
구비를 돌아 처음 만난 당금마을을 카메라에 담으며 ‘옹기종기 다정하것다’는 인상을 받았다. 집들이 가까이 붙은데다, 주홍색 슬레이트 지붕을 한 집이 많아 형제들 마냥 닮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집이 제법 되는데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다른 섬처럼 발목을 잡는 폐가가 적은 탓도 있었을 테지만.

한 10분? 임자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타나길래 굴을 오천원어치만 달라 했더니 코웃음부터 친다. ‘술안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랄 텐데요’ 하는 듯하다. 다시 만원어치를 달라 했더니 그래봤자 10개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하면 되겠네요. 혼자인 데다 안주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구요.” 알겠노라 굴을 까주는데 아무래도 10개는 훨씬 넘게 주는 듯하다. 그걸 봉다리에 들고 구판장엘 가 좀 씻어주고 소주 한 병, 컵라면 하나 달라 했더니 구판장 아주머니 대답이 걸작이다. “이만 하면 컵라면 없이도 배가 부를 겁니다”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기를 쓰는 도회지 가게에선 도무지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 바람에 나조차 마음이 넉넉해져 “아주머니도 좀 드세요”했더니 고개를 가로지르며 묻기를 “이 굴을 얼마에 샀소?” 한다. “만원칩니다” “아이고 소매물도 배가 와서 사도 2만원치는 되것네요. 그 사람들이 이걸 또 관광객들에게 내놓으면 3만원은 받겠는데요” 하니 굴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다.

크고 굵고 탱탱한 자연산 굴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입 안 가득 짙고 향그러운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 읍도에서 맛본 돌굴과는 또 다른 맛이다. 섬은, 통영의 섬들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제각각의 맛을 품고 있기에 지겹거나 식상할 수가 없다. 그 맛들이 계절마다 또한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 섬으로의 여행은, 섬에게로의 여행은 멈춰지지가 않는 것이리라.
생굴만 먹으니 냉냉해서 컵라면을 주문했더니 “머할라꼬요?” 한다.
“국물 안주라도 할까해서요”
“그라몬 이 굴을 몇 개 삶고, 그 국물을 넣어서 묵는 기 나을 낍니다. 내가 끼리 주께요”
그렇게 나온 컵라면은 또 얼마나 예술인가! 멋드러진 안주에 술도 담배도 충분하니 바다와 섬과 바람을 술친구로 불러 앉혔다. 내가 말이야... 우리 누나가 말이야... 혼자만 씨부렁거려도 아무도 탓을 하지 않는데 여든 두 해를 사셨다는 섬 할마시가 불쑥 말을 건다.
“치운데 와 안에서 안 묵고...아, 바다 구경할라꼬요? 것도 재미는 재미지요”
할마시는 제주서 물질하러 왔다가 당금마을에 눌러 앉았단다. 제주도에 대면 뭍이 코앞인 대매물도는 할마시한테 육지나 매한가지였을 터. 자식도 없이 그렇게 단 둘만 살다 3년 전 할아버지를 떨군 이야길 하면서도 “보고 싶겠네요”라는 말에는 “머시, 하나도 안 보고 싶다”고 단호하게 턱을 돌린다. 배도, 밭도 없었다니 할마시 물질로만 버텨왔을 시린 세월이 절로 스친다.
“4시 반 배로 나갈라꼬요?”
“네? 그때도 배가 있습니까?”
“하모, 요새는 하루 세 번 안 있지요”
뜻밖의 소리에 머릿속이 허둥지둥이다. 남은 술 다 먹지 않고도 이제 막 잠이나 잘까 했던 차, 깨면 밤일 테고 억새밭에 별 보고 누울 계절도 아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간들 또 할 짓이 있나. 아, 비진도! 대항 오는 길에 잠시 스쳤을 뿐이지만 펜션과 노래방이 점령해버려 어딘지 서글펐던 그 비진도. 그래, 가보자. 거기 모래사장이나마 밟아보자.

펜션들이 차고 넘치는 비진도에 숙소가 없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겨울엔 아예 영업을 않는 것이다. 통영 안에서도 알아준다는 시금치를 묶는 동네 어른들 틈으로 가 방 하나만 내어 달라고 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찬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시금치 하나면 됩니다” 했더니 보일러 돌리기는 마땅찮고 전기장판에 자려면 자란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짐을 부려놓고 해변으로 나서는데 아까 함께 내렸던 두 처자는 아직도 숙소를 정하지 못해 큰 배낭을 들고 이리저리 낑낑대고 있다. 그게 안돼보여 좀 도와줄까 했더니 알아서 하겠다며 반대쪽으로 간다. 여름 한 철을 위해 지은 펜션과 -말이 펜션이지 싸구려 여관에 불과한-, 노래방은 겨울엔 흉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식당도 밥을 팔지 않는다. 여름에는 시달리고 겨울에는 처절하게 외면 받는 비진도. 사시사철 사람들이 찾는 소매물도와는 상반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노을과 해변은 여전히 이쁜데도 말이다.
저녁상을 차린 어르신은 물 자랑이 한창이다.
“우리집 물맛이 얼매나 좋다고. 속병도 다 낫는다니까. 우리 아들도 여기 들리면 꼭 물을 가져가.”
물에도 맛이 있다는 건 섬에 다니고 나서야 알았다. 수도, 추도에만 물 자랑이 있는 줄 알았지 비진도에서는 뜻밖이다. 좀 다르다면 비진도 전체나 마을 우물 맛이 아니라 이 한 집만 그렇다는 것인데, 그 맛은 동냥을 하고 싶을 정도다. 동네 어른들이 작업을 하는 걸 봐서 그런가 물이 좋다니 더욱 그런가 시금치 맛도 일품이다. 아삭아삭, 씹을 때마다 살짝 얼린 해풍이 녹는 듯하다. 그걸 청해서 술안주로 삼으려니 낮에 먹었던 굴 생각이 든다. 하룻만에 두 섬에서 빼어난 맛을 섭렵하고 다니니 이만한 팔자가 또 있으랴.
아침. 어르신은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냥 기침도 없이 함부로 문을 열고는 “밥 묵자. 배 시간됐다” 하신다. 그 투박함이 어딘가 향그롭다. 명절만 빼면 나를 이렇게 깨우는 이 누가 있으랴.



시락국밥집에 가방을 두고 셋은 세병관으로 향했다. 세병관이 가지는 의미도 의미지만 거기서보는 통영항의 모습은 또 얼마나 빼어난가.
“여기서 통영을 굽어보니 이순신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지요?”
“아뇨 전 원래 공주라서, 얘는 시녀구요...호호호”
그 웃음을 가지고 중앙시장 활어회 골목을 스쳐 동피랑으로 올랐다.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고 왔으면 동피랑을 빼먹을 리 없겠지만 막 찍어서 왔으니 여길 알 턱이 없다. 통영에 와 몇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동피랑을 추천하진 않더라고 한다.
동피랑 벽화 골목에서 두 처자의 카메라가 유난을 떤다. “아니 세상에, 어머나” 감탄사도 연발이다. 벽화도 벽화지만 바다가 보이는 언덕 골목길의 정취에 취한 듯하다. 어쩌면 내가 동피랑에서 살 게 될련지도 모른다고 하니 “너무 샘나요, 나중에 놀러오면 방 빌려주실거죠?” 동그란 눈을 하는데 <슈렉 II>에서 본 고양이 같다. 정말, 동피랑에 살게 되면 이런 눈들을 많이 만날 것 같다.
충무김밥은 너무 흔하니, 옛날식 꼬지김밥을 사 가서 자랑하라 일러주고 시락국밥집에 맡겼던 가방을 챙겨들었다. 대매물도, 비진도를 여행하고 낯선 이를 만나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고향을 자랑하느라 반나절 가이드를 하고 나니 소원 중 하나를 이룬 것만 같다. 한 때 내 꿈은 여행가, 여행 가이드였으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