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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매물도의 4월  

섬! 먹을 거리의 파라다이스

섬 섬 섬 2009/04/03 18:14

통영에 온 지 1년. 어린이 캠프, 한글 학교, 생태섬이라는 갖가지 핑계로도 모자라 섬 탐방, 주말여행 등 온갖 핑계로 섬을 헤집고 다니는 이유 중 하나는 입 때문이다. 해풍을 맞고 자란 채소, 제철 생선 등에 맛을 들인 내 혀는 이제는 호강에 겨워 요강에 똥 쌀 정도로 사치스러워졌다. 문득 그 자랑이 하고 싶어졌다. 이 포스팅을 보고 섬에 가고 싶어 안달이 나도 할 수 없다. 내가 ‘그 섬에 갔다’고만 하지 절대로 ‘그 섬에 가는 법’을 일러주지 않는 것은 무분별한 발걸음 때문에 이 좋은 먹을 거리를, 이 좋은 사람을 뺏기고 싶지 않아서다. 그렇다. 섬에 관한한 난 이기적이다.

용초도에서 간 보고, 읍도에서 뻑 가다

처음 들어간 섬은 용초도. 거기 갈 땐 섬에서 뭔가를 먹는다는 생각조차 못했었고, 일행들이 사온 충무김밥을 딱 한 줄 먹는 것으로 점심을 끝냈다. 한산도로 나와 횟집에서 면장님의 융숭한 대접을 받으면서 갈치젓과 배춧잎의 절묘한 조화에 눈을 떴을 뿐, 섬에서 밥 먹는 다는 게 얼마마한 기쁨인지는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다.두 번째 들어간 섬은 읍도와 연도. 섬 할머니는 우리 일행이 일요일에 올 줄로만 알고 아무 것도 준비를 해 놓게 없다며 무거운 다리를 부지런하게도 끌었다. 그렇게 직접 따신 돌굴을 약 안 친 남새밭 채소들로 무쳐주셨는 바, 이때 까진 섬 밥상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조차 못해 두고 두고 아쉬울 뿐이지만 그 깊은 맛은 기억만으로도 여전히 유효하다. 생애 처음으로 오직 아침을 먹기 위해 잠을 깼던 날이었다.

우도, 그 맛에 제대로 걸려들다


우도를 들어간 건, 거기서 강남연씨를 만난 건 사고에 가까웠다. 따개비밥, 김국, 해물된장...1박2일 동안 거기서 먹은 모든 음식들은 비명과 함께 삼켜야만 했다. 이후로 열 번이 넘게 우도를 찾고 있지만 갈 때마다 미처 카메라에 담지 못했던 음식과 조우하고 있으니, 나에게 이만큼 근사한 식당이 또 있으랴. 그 사진이 너무 많아 요리책으로 엮기에도 넘칠 정도다.

대매물도, 성게와 미역의 컴비네이션
4월의 대매물도에서 성게 미역국을 안 먹어봤으면 말을 하지 말 일이다. 나중에서야 가왕도 미역이 더 알아준다는 걸 알았지만 미역과 성게가 모두 유명한 대매물에선 최상의 궁합이 아닐 수 없었다. 식전과 식후에는 민박집 아주머니가 직접 물질을 해 잡아주신 해삼, 전복, 군소, 문어로 입이 심심할 틈이 없었고, 밤 12시가 넘어서는 옆집 제사음식까지 받아먹었으니 그야 말로 먹을 복이 터졌던 섬이다. 되려 술이 모자라 구걸하러 다녔던 기억이 부끄럽게 스친다.

연대도, 또 하나의 집이 되다
섬 탐방 일행과는 별도로 RCE 초등학교 여름캠프와 인연이 되어 처음 찾게 된 연대도는 내겐 이제 집이나 마찬가지다. 아무 때도 들어가도 “회 하고 소주 한 잔 할래?” 묻는 어촌계장이 있고, 마을 사람들끼리 펼친 술자리에 엉덩이를 들이미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 되어버렸다. 오히려 안 먹는다고 말하기가 더 불편하다고나 할까. 배움마실 수료식 때는 산두릎이며 방아며 상추며 마늘이며 오직 연대도에서 나는 것만으로 차린 밥상에 장어탕을 올리고 동네 어른들과 같이 앉았던 바, 그것을 함께 먹은 RCE 동료는 그 후로 통영에서 파는 장어탕도 맛이 없어 못 먹겠다 한다.

죽도, 별신굿이 주는 별난 맛

죽도에 처음 갔을 때는 돌담 사이로 호박이 주렁주렁 열리는 계절이었다. 그걸 봐서 그런지 호박 무침과 호박국에 코를 처박았던 기억이 새롭다. 죽도는 또 남해안 별신굿으로도 유명한 바, 그 때 찾는 외지인에게 아침부터 매 끼니 챙겨 먹이는 대접이 넉넉하고 집집마다 내오는 제사상의 음식도 용왕과 함께 나눠 먹는 엄숙함이 있다. 생굴이 들어간 떡국도 떡국이지만 군소 계란말이를 굿하는 날 처음 먹어본 기억이 새롭다.

문어포 조개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문어포에서 홍합과 조개국을 못먹어봤으면 서운할 뻔했다. 거기 조개는 전국 최고가로 거래될 만큼 그 맛이 쫄깃하고 시원하다. 없이 살 때 밥에 고구마를 넣어 먹었다는 고구마 밥과 빼때기죽이 너무나 반가웠고, 섬에서 아이들과 함께 너물국을 먹어보기는 또 문어포가 처음이었다.

물섬에서 가을을 씹다
물섬에선 소금물에 절인 햇밤을 먹었다. 집집 마다 길손에게 내어 놓을 것이 그것뿐이라는 듯 아낌 없이 먹기를 권했다. 여름의 끝자락인지 가을의 첫 자락인지 헷갈려했다가 그 밤을 먹고서야 가을을 확신했다. 잠잘 곳이 마땅치 않을 것으로 판단해 일행이 준비해간 삼겹살은 또 얼마나 지글거렸던가. 그대 섬에서 삼겹살 구워먹어 보셨남?

풀섬은 개도 생선을 가려 먹는다
풀섬. 거기엔 딱 한쌍의 부부가 염소를 키우며 산다. 사람이 반가워 미치는 개도 2마리가 있다. 주인 입맛을 닮아 돔도 자리돔과 참돔이나 먹지 병어돔은 거덜떠도 안 본다니 ‘세상에 이런 일이’ 따로 없다. 섬 주민보다 4배나 많은 일행이 찾았으니 우리 끼니는 우리가 해결해야 했다. 역시나 우리의 선택은 삼겹살이었다. 그런데, 아주머니께서 내오신 묵은 김치가 얼마나 걸작인지 진즉에 가방에 넣었던 카메라를 다시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카메라에 맛이 찍히지 않는 게 아쉬울 뿐이다. 다음날은 아저씨께서 직접 잡아 온 학꽁치 무침을 놓고 평상에 앉았다. 먼 섬들을 바라보며 술잔을 돌리다보니, 평소엔 술을 입에 대지도 못하는 사람까지 넉 잔이나 입을 적신다.

사량도, 개불의 최고봉을 만나다

가기 전에 전 이장님 댁에 많은 걸 부탁했다. 큰 맘 잡수신 이장님 내외가 돔 서너 마리를 설렁서렁 내오셨는바, 그것보다는 개불이 더 인기였다. 삼천포 앞바다에서 나는 개불은 전국 최고로 치는 탓에 삼천포엔 개불만 파는 집도 꽤나 된다고 한다. 그 삼천포 앞바다에 있는 섬이 사량도니, 그 맛이 또한 어떠했으랴. 회를 제대로 즐기는 방법은 회 따로, 된장 찍은 배추 따로 라는 걸 그때서야 배웠다.

가왕도, 일일 농부가 되다


거긴 아무도 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가서 보니 전기도 없다. 그럼에도 일행들은 먹는 것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다. 산두릎, 부추, 달랭이, 쑥, 마늘이 지멋대로 자라고 있었고 그걸 캐서 무치거나 끓이면 그만이었다. 찬을 직접 준비하니 그 재미가 또한 쏠쏠하다. 물섬에 이어 회를 먹어보지 못한 두 번째 섬이 되었지만 그런 계산은 나 혼자만 해보는 듯했다. 다음 날 산행을 하는지 달래를 캐는지 모르게 챙겨간 산 달래는 얼마나 또 맛이 있었는지 아직 물어보질 못했다. 다만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 한 때 마산 시장에서 쌀과 바꿔 먹을 정도로 유세를 떨었다는 가왕도의 미역을 맛보지 못한 게 아쉬웠을 뿐이다.

추도 물메기 맛을 아시는감


추도와 두미도는 혼자서 처음 가는 길이라 그랬는지 조촐한 상을 받았다. 조촐하지만 결코 부족하지는 않았다. 두미도에선 매실에 절인 깻잎이 기억에 남고, 추도는 물메기 말리는 계절에 맞춰간 것이라 온통 메기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법적으론 거래가 금지된 물메기알 듬뿍 넣은 된장찌개와 마른 물메기 한 마리로 한 밤을 샐 수 있었으니 외롭거나 심심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럼에도 홀로 섬에 갈 때마다 섬 탐방 일행들이 생각나는 건 무엇을 보든, 무엇을 먹든 그들과 함께 하는 게 일행의 숫자만큼이나 배로 즐거워지는 탓이다.

낙향한 지 1년. 이렇게 잘 먹고 다녔으면 낙담할 게 무엇이 있으랴. 이 1년치 밥상을 서울에서 20년 먹은 밥상과 바꾸자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답하리라. “택두 없는 소리 하지 마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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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금마을과 비진도, 그리고...

섬 섬 섬 2009/02/03 14:01

여객터미널에 ‘대항’이라고 표기되어 있기에 ‘안 가본 섬이구나, 어떤 모습일까’ 하고 배에 올랐다가 우연찮게 김기자를 만났다. ‘대항’이 바로 4월에 갔던 대매물도라는 말을 듣곤 잠시 절망했으나 그때는 가보지 못한 당금마을로도 길이 이어진다니 배삯이 아깝지만은 않겠구나 했다.



대항에서 당금마을로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겨운 데다 바다의 여백이 많다. 두 마을의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길이라 그런지 두미도처럼 험하지 않다. 흙길이라 추도의 신작로와도 또 다른 맛이 있다. 지금 들먹이는 세 길은 시멘트로 만든 해안도로가 아니라 섬의 능선을 따라 난 흙길이라 먼 바다를 옆구리에 끼게 된다. 답답한 날, 혼잣소리를 아무렇게나 흥얼거리기에 딱 좋은 길들이다.

구비를 돌아 처음 만난 당금마을을 카메라에 담으며 ‘옹기종기 다정하것다’는 인상을 받았다. 집들이 가까이 붙은데다, 주홍색 슬레이트 지붕을 한 집이 많아 형제들 마냥 닮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집이 제법 되는데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다른 섬처럼 발목을 잡는 폐가가 적은 탓도 있었을 테지만.

마을은 조용하다. 모두 바다로 나갔는지 “오데서 왔어요”라고 묻는 이 하나 없다. 인기척이라곤 포구의 해녀 작업장 안에서 오가는 아녀자들의 소리뿐이다. 그것도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제주도 사투리인 듯하다. 포구의 산판에는 지금 막 뭍으로 올라온 자연산 굴과 군소가 널부러져 있다. 마침 술이나 한잔 할 판이었는데 딱 좋은 안주가 아닐 수 없다. 필시 이것들의 주인은 아까 작업장에서 들었던 목소리 중 하나일 테지만 문을 열기도, 불러내기도 마땅찮다. 잠수복이라도 갈아 입는 중이면 얼마나 낭패인가.

한 10분? 임자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타나길래 굴을 오천원어치만 달라 했더니 코웃음부터 친다. ‘술안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랄 텐데요’ 하는 듯하다. 다시 만원어치를 달라 했더니 그래봤자 10개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하면 되겠네요. 혼자인 데다 안주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구요.” 알겠노라 굴을 까주는데 아무래도 10개는 훨씬 넘게 주는 듯하다. 그걸 봉다리에 들고 구판장엘 가 좀 씻어주고 소주 한 병, 컵라면 하나 달라 했더니 구판장 아주머니 대답이 걸작이다. “이만 하면 컵라면 없이도 배가 부를 겁니다”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기를 쓰는 도회지 가게에선 도무지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 바람에 나조차 마음이 넉넉해져 “아주머니도 좀 드세요”했더니 고개를 가로지르며 묻기를 “이 굴을 얼마에 샀소?” 한다. “만원칩니다” “아이고 소매물도 배가 와서 사도 2만원치는 되것네요. 그 사람들이 이걸 또 관광객들에게 내놓으면 3만원은 받겠는데요” 하니 굴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다.


크고 굵고 탱탱한 자연산 굴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입 안 가득 짙고 향그러운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 읍도에서 맛본 돌굴과는 또 다른 맛이다. 섬은, 통영의 섬들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제각각의 맛을 품고 있기에 지겹거나 식상할 수가 없다. 그 맛들이 계절마다 또한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 섬으로의 여행은, 섬에게로의 여행은 멈춰지지가 않는 것이리라.

생굴만 먹으니 냉냉해서 컵라면을 주문했더니 “머할라꼬요?” 한다.

“국물 안주라도 할까해서요”
“그라몬 이 굴을 몇 개 삶고, 그 국물을 넣어서 묵는 기 나을 낍니다. 내가 끼리 주께요”

그렇게 나온 컵라면은 또 얼마나 예술인가! 멋드러진 안주에 술도 담배도 충분하니 바다와 섬과 바람을 술친구로 불러 앉혔다. 내가 말이야... 우리 누나가 말이야... 혼자만 씨부렁거려도 아무도 탓을 하지 않는데 여든 두 해를 사셨다는 섬 할마시가 불쑥 말을 건다.

“치운데 와 안에서 안 묵고...아, 바다 구경할라꼬요? 것도 재미는 재미지요”

할마시는 제주서 물질하러 왔다가 당금마을에 눌러 앉았단다. 제주도에 대면 뭍이 코앞인 대매물도는 할마시한테 육지나 매한가지였을 터. 자식도 없이 그렇게 단 둘만 살다 3년 전 할아버지를 떨군 이야길 하면서도 “보고 싶겠네요”라는 말에는 “머시, 하나도 안 보고 싶다”고 단호하게 턱을 돌린다. 배도, 밭도 없었다니 할마시 물질로만 버텨왔을 시린 세월이 절로 스친다.

“4시 반 배로 나갈라꼬요?”
“네? 그때도 배가 있습니까?”
“하모, 요새는 하루 세 번 안 있지요”

뜻밖의 소리에 머릿속이 허둥지둥이다. 남은 술 다 먹지 않고도 이제 막 잠이나 잘까 했던 차, 깨면 밤일 테고 억새밭에 별 보고 누울 계절도 아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간들 또 할 짓이 있나. 아, 비진도! 대항 오는 길에 잠시 스쳤을 뿐이지만 펜션과 노래방이 점령해버려 어딘지 서글펐던 그 비진도. 그래, 가보자. 거기 모래사장이나마 밟아보자.


펜션들이 차고 넘치는 비진도에 숙소가 없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겨울엔 아예 영업을 않는 것이다. 통영 안에서도 알아준다는 시금치를 묶는 동네 어른들 틈으로 가 방 하나만 내어 달라고 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찬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시금치 하나면 됩니다” 했더니 보일러 돌리기는 마땅찮고 전기장판에 자려면 자란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짐을 부려놓고 해변으로 나서는데 아까 함께 내렸던 두 처자는 아직도 숙소를 정하지 못해 큰 배낭을 들고 이리저리 낑낑대고 있다. 그게 안돼보여 좀 도와줄까 했더니 알아서 하겠다며 반대쪽으로 간다. 여름 한 철을 위해 지은 펜션과 -말이 펜션이지 싸구려 여관에 불과한-, 노래방은 겨울엔 흉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식당도 밥을 팔지 않는다. 여름에는 시달리고 겨울에는 처절하게 외면 받는 비진도. 사시사철 사람들이 찾는 소매물도와는 상반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노을과 해변은 여전히 이쁜데도 말이다.

저녁상을 차린 어르신은 물 자랑이 한창이다.

“우리집 물맛이 얼매나 좋다고. 속병도 다 낫는다니까. 우리 아들도 여기 들리면 꼭 물을 가져가.”

물에도 맛이 있다는 건 섬에 다니고 나서야 알았다. 수도, 추도에만 물 자랑이 있는 줄 알았지 비진도에서는 뜻밖이다. 좀 다르다면 비진도 전체나 마을 우물 맛이 아니라 이 한 집만 그렇다는 것인데, 그 맛은 동냥을 하고 싶을 정도다. 동네 어른들이 작업을 하는 걸 봐서 그런가 물이 좋다니 더욱 그런가 시금치 맛도 일품이다. 아삭아삭, 씹을 때마다 살짝 얼린 해풍이 녹는 듯하다. 그걸 청해서 술안주로 삼으려니 낮에 먹었던 굴 생각이 든다. 하룻만에 두 섬에서 빼어난 맛을 섭렵하고 다니니 이만한 팔자가 또 있으랴.

아침. 어르신은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냥 기침도 없이 함부로 문을 열고는 “밥 묵자. 배 시간됐다” 하신다. 그 투박함이 어딘가 향그롭다. 명절만 빼면 나를 이렇게 깨우는 이 누가 있으랴.

나오는 길에 어제 보았던 두 처자를 다시 만났다. 한 명은 부산에서 한 명은 일본에서 오는 길이라 한다. 서울 가기 전 여행하는 길이라는데, 통영은 “아무렇게나 막 찍어”서 왔다 한다. 추슬추슬 비는 오는데 통영을 헤매고 다닐 처지에 마음이 쓰인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온다 하길래 우선 서호시장에 가 시락국부터 시키고, 내 몫으로는 막걸리를 청했다. 한 처자가 그 맛을 보더니 자기도 한 대접 달라 하자 주인 할마시가 나한테 내준 것보다는 작은 대접을 내놓는다. 눈이 동그래진 처자. “잔이 왜 달라요?” “총각껀 이천원짜리고 각시껀 천원짜리지” 한다. 이 할마시, 전에 RCE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이랑 왔을 때 양푼에 밥 가득 내놓으며 “모자라면 더 묵어라” 했던 분이다. 당금마을 구판장에서도 그랬지만 따로 말이 없어도 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런 배려를 만나면 사는 맛이 진해진다.



시락국밥집에 가방을 두고 셋은 세병관으로 향했다. 세병관이 가지는 의미도 의미지만 거기서보는 통영항의 모습은 또 얼마나 빼어난가.

“여기서 통영을 굽어보니 이순신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지요?”

“아뇨 전 원래 공주라서, 얘는 시녀구요...호호호”

그 웃음을 가지고 중앙시장 활어회 골목을 스쳐 동피랑으로 올랐다.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고 왔으면 동피랑을 빼먹을 리 없겠지만 막 찍어서 왔으니 여길 알 턱이 없다. 통영에 와 몇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동피랑을 추천하진 않더라고 한다.

동피랑 벽화 골목에서 두 처자의 카메라가 유난을 떤다. “아니 세상에, 어머나” 감탄사도 연발이다. 벽화도 벽화지만 바다가 보이는 언덕 골목길의 정취에 취한 듯하다. 어쩌면 내가 동피랑에서 살 게 될련지도 모른다고 하니 “너무 샘나요, 나중에 놀러오면 방 빌려주실거죠?” 동그란 눈을 하는데 <슈렉 II>에서 본 고양이 같다. 정말, 동피랑에 살게 되면 이런 눈들을 많이 만날 것 같다.

충무김밥은 너무 흔하니, 옛날식 꼬지김밥을 사 가서 자랑하라 일러주고 시락국밥집에 맡겼던 가방을 챙겨들었다. 대매물도, 비진도를 여행하고 낯선 이를 만나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고향을 자랑하느라 반나절 가이드를 하고 나니 소원 중 하나를 이룬 것만 같다. 한 때 내 꿈은 여행가, 여행 가이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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