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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전화  

취한 전화

홀로 아리랑 2007/02/26 04:50
 

마감 하루 전에만 해도 어떤 숙제 같던 일이 마침내 끝이 보일 때는 한숨이 올라온다. 꼭 이러고 살아야만 하나...진이 빠진다. 그렇게 멍하니 있는데 전화가 울린다. 새벽 2시. 액정엔 고향친구의 이름이 떴다. 하용만.

다른 친구에 대면 술 먹고 전화하는 일이 아주 드문 이름인 데다 동창회와 계모임 회장을 맡은 친구라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싶어 얼른 전화기를 열었다. 일은 끝났나? 묻는 목소리는 취하지도 않았고, 여유도 있다. 이 시간에 웬일이냐 되물었더니 영태한테 잡혀서 술 먹는단다.


‘잡혔다’고는 하나 영태가 술꼬장을 부리는 친구가 아닐뿐더러 다른 친구들 사정부터 살피는 편이니 둘이 편하게 마주 앉은 풍경이 안 봐도 비디오다. 근 1주일을 일에 시달린 나로서는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전화는 이내 영태로 바꿔졌다. 용만이보다는 한결 낮고 축축한 목소리다. 혼자 살면서 좋은 게 있다면 술 취한 친구들의 전화를 자주 받는다는 것이다. 꼭 술에만 취했겠는가. 일몰에도 맛에도 세상에도 취해 술을 곁들인 때도 적지 않다. 오늘은 동창 누구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만나 여태 술잔을 끼고 있다니 미처 잘 모시지 못하고 있는 부모님의 흰머리나 덧없는 청춘에라도 취했을 것이다. 아무려나 혼자만 취하기 아까워 나를 찾는다 생각하면 슬쩍 연애라도 하는 기분까지 들 정도로 그 느리고 비틀거리는 목소리들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말숙한 목소리보다는 더 오래 대꾸한다. 정작 전화를 건 친구가 다음날 휴대폰을 다시 열어보지 않으면 통화를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 못한다 하더라도.


영태 말로는 안 보면 보고 싶고, 만나지면 번거럽고 하는 게 중년에 접어든 친구들의 우정이 아니겠냔다. 아마도 추석에 같이 본 친구들이 다시 흩어지고 나니 그때 못 다한 이야기들이 뒤늦게 꿈틀거린 모양이다. 남인수가 <청춘고백>을 애절하게 꺾어 부르길 ‘헤어지면 보고 싶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것 이내 심사’ 라 했는데, 비단 연애만 그런 것은 아니지 싶다. 언제이던가. 나는 노량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가을을 마시다가 영태에게 이런 전화를 한 적이 있다. “보고 싶을 땐 고마 전화하고 말란다 마. 받거나 말거나 니 맘대로 해라.”


불륜도 아닌데 친구에게 하는 전화를 이토록 조심했던 데에는 친구들에겐 나에게 없는 가정이 있다,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는 밴댕이 소갈딱지 소심증을 어쩌지 못한 때문이다. 설령 영태가 용만이가 경웅이가 봉기가 깊은 밤 중에 전화해도 깨거나 못 깨거나 나는 나 혼자만의 일이지만, 내 쪽에서 그럴려면 친구 마누라와 아이들이 눈을 부비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좀 많이 취했을 땐 이런 생각조차 아니 들었으면 좋겠건만 그 소갈딱지가 어디 가겠는가. 그러니 여태까지도 나는 보고 싶을 때에도(하필, 꼭 취한 밤에 유독 보고 싶어지는 걸까?) 전화를 못하고 있다. 그러니 받는 전화가 더욱 사무친다.


얼마 전에는 생전 전화가 없던 대학동창이, 다른 친구들 말로는 마누라한테 잡혀서 술 한번 제대로 못 마시고 산다는 그 녀석이 어떻게 마셨는지 잔뜩 취해서는 “보고 싶다 새끼야”만 주억거리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 이틀 전에는 부산에 산다는, 그래서 20년 넘게 얼굴을 못 본 고향 친구가 서울 사는 다른 친구의 전화로 “니도 애북 마신다며? 나도 그렇다. 내가 서울 함 가지” 해놓고는 여즉 기별이 없다. -말이 나와서 말이지 고향친구들과 술 먹을 때는 통영보다 서울이 훨씬 편하다. 고향친구들이 서울 오면 참견할 마누라 응석부릴 아이들도 없어 오롯이 우리만의 술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마누라와 아이들이 잘못하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데도 그렇다. 오늘도 영태더러 언제 서울 함 오라고 했다. 그렇다고 작심하고 올라오겠냐마는 남자들의 이런 심뽀에 대해 영태 안사람을 비롯 친구들의 안사람에게 미리 용서를 구한다- 이것저것 추려보니 이렇게 막살고도 귀한 전화를 받는다는 것이 여간 분에 넘치는 일이 아니다. 그대, 서울의 시커먼 하늘 아래서 숨이 턱턱 막힐 때 ‘보고 싶다 잘 살아라’ 하는 고향 친구들의 전화를 받은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요즘 내가 친해지고 싶어 끼고 다니는 김사인 시인은 <때늦은 사랑>이란 시의 끝을 참 술맛 나게 빚었다.


뒤축 무너진 헌 구두나 끌고/ 나는 또 쓸데없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늙어 가겠지


훗날, 세월이 더 깊어지면 나도 친구들 집을 꼭 이렇게 어슬렁거릴 것 같다. 친구 마누라라서, 친구 아이들이라서 더욱 좋아라 하면서도 행여 그 식구들의 눈 밖에 날까 비틀거리지 않으려 애쓰면서.


2007년 설날 구름다리 아래 한방 박은 고향 친구 가족들 사진. 볼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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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캠프를 다녀오다 -2

바다의 땅 2006/08/19 23:33

영태네
봉기네
용만이네
저녁이 배식되고 가족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그저 구경이나 하며 뒤풀이나 기다려야겠다던 계산이 처음부터 어긋났다. 성수가 제사 탓에 아들내미를 맡기고 간 바, 이 영특한 놈이 스스로 장기자랑 신청을 해 둔 것이다. 아이가 혼자 무대로 올라가니 사회자가 가족도 나오란다. 얼핏 생각에 가족캠프서 아이만 댕그라니 두기도 머쓱해 봉기더러 함께 올라가 잠시간 가족이 되자고 했다. 그러니 사회자가 또 농을 건다. 봉기랑 나랑 둘 중 누가 아빠고 누가 엄마냐는 것이다. 속절없이 웃을 수밖에.

<가족의 탄생>이라는 영화는 가족이라는 게 얼마나 징한 관계인지를 보여줄 뿐더러, 핏줄로 엮이지 않은 가족의 탄생 과정도 잘 보여준다. 굳이 영화가 아니라도, 사람들은 징하지만, 그래도 가족을 갖고 싶어 한다. 가족만이 당신이 왜 내 아빠고 엄마인지, 니가 왜 내 아들이고 딸인지를 묻지 않는다. 서로 관계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그 자체다. 가족 캠프에서 친구네를 비롯한 수많은 가족들을 보면서 가장 부러웠던 것이 바로 이것이었을까? 사회자의 농담을 달리 생각하면, 시간이 흐를수록에 내가 왜 그들의 친구인지를 점점 더 묻지 않고 말하지 않는 친구들이 가족 같다는 생각이 얼핏 스친다.

술고생만 하다 가신 만세형
친구들의 웃음. 몇번이라도 좋아라~

장기자랑이 끝날 때쯤 마산에서 만세형이 도착했다. 친동생과 사촌동생도 함께다. 만세형의 동생은 서울서도 여러 번 만난 적이 있는 바, 예전의 내 표현대로라면 ‘참 동생처럼 생긴’ 동생이다. 술이 좀 들어가면 형, 형 하며 나더러 말도 놓으라고 했었던바, 또 맨 정신에 만난 탓에 서로 말을 높이고 만다.

오늘의 공식일정이 끝났고 밤도 익어 이젠 술을 좀 편하게 마셔도 되겠다 싶으니 친구들이 모두 함께하는 술자리가 펼쳐진다. 호사라는 생각은 이 때부터 강해졌다. 영태, 봉기, 경웅이, 용만이 등 그저 계모임 모임이라고만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고향친구들과(나는 정말 어떻게 이런 좋은 친구들만 계모임에 들었는지 신기할 때가 많다) 대학 때의 인연 중 가장 친한 주열이, 영화 동호회서 알게 된 이 중 으뜸이라 할 수밖에 없는 만세형, 그리고 호주서 온 마이클까지. 확신하건데 내 장례식이 아닌 다음에야, 이런 자리를 또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리라. 과연, 이들과 밤새 있기 위해 술의 속도를 조절할 만도 하지 않은가.

암만 술을 천천히 마신다해도 늦게 도착한 만세형네까지 대작하기에는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새벽 3시쯤인가? 서울서 내려오면서부터 가능하다면 친구들과 달밤에 누드 수영을 한 번 해보리라 했던 것을 해본 다음엔 녹초가 되어 이부자리를 펴고 말았다.


공기가 좋아 그런가. 서울에서와 달리 간밤에 과음한 것치고는 제법 일찍 눈을 떴다. 아침이고 뭐고 눈을 좀더 붙일까 싶다가도, 아이와 마누라들 때문에 일찍 일어났을 친구들을 생각하니, 같이 마셔놓고 혼자만 더 자는 게 얄미울 것 같아 기지개를 켰다. 그리곤 야단을 맞는 것으로 통영에서의 마지막 날을 시작했다. 모두가 함께 하는 캠프인데 만약 안전사고라도 났으면 캠프 자체가 발칵 뒤집히는 것은 물론이고, 내년부터는 아예 열리지도 못할 것 아니냐는 용만이의 타박이 제법 매섭다. 누드 수영이야 나중에 딴 데서도 해도 될 것을 굳이 캠프에서 한 내가 참 바보스럽다. 더구나 친구가 하는 캠프가 아닌가. 나야 죽으면 그만이겠지만, 친구의 이력엔 얼마나 징한 빨간 줄이 되겠는가. 용만이의 타박이 쪽팔리는 걸 떠나 내가 정말 멍청한 짓을 한 게 스스로도 부끄러울 뿐이다.


간밤에 나를 덩달아 친구들과 보조를 맞춘다고 무리한 마이클은 속이 쓰려 아침도 못먹겠단다. 이런 상태로 자기가 있어봐야 내가 신경만 쓰일 테니 먼저 가겠단다. 그리곤 덧붙이길, 내 다른 친구들에게 자기는 절대로 일 때문에 먼저 간 것이지, 속이 쓰려 먼저 가는 게 아니라고 해달란다. 자기가 무리했단 걸 알면 친구들이 조금 무안해 하거나 행여 다음에라도 보면 술자리를 조심스러워할까 그런단다. 참으로 배려가 깊은 인물이 아닐 수가 없다. -미안하다 마이클, 요기다가 쓸 줄은 몰랐지? ^^

영태네
용만이네
봉기네


아들내미 건져 올리는 주열이

바나나 보트도 타고 미끄럼도 타고 일요일 오전은 그야말로 가족들을 위한 해양캠핑이다. 엇다 내놔도 잘만 논다는 봉기 아들 딸은 물 만난 고기가 따로 없다. 미끄럼을 타고 물에 빠져도 숨도 고르지 않고 다시 줄을 선다. 정말 시간이 아깝다는 듯 요리조리 뛰어 다니는 게 부지런히 논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통영서 사는 용만이네, 영태네도 별반 다르지가 않고, 어제만 해도 바다를 무서워하던 주열이 아들내미도 아예 물에서 나오려고를 않는다. 그런 광경을 처음 써보는 카메라를 메고 친구 가족들을 렌즈에 담으려니 부러움만 더해진다. 친구들이 간밤 쌓인 피로에도 아랑곳 않고 살뜰하게 제 새끼를 챙기는 저토록 좋은 아빠가 되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점심을 먹고 나니 텐트를 걷을 시간이다. 아까부터 속이 안 좋아 먼저 가겠다던 만세형네를 붙잡아 둔 것은 공식 일정이 끝나면 좀 편하게 대면할 여유가 생길 듯해서였던 바, 모두 정리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려 차 막힐 일이 걱정이다. 봉기 말대로 나중이면 경웅이나 용만이에게 부탁해서 배라도 한 번 같이 타보련만, 둘다 이번 캠프로 정신이 없을 테고, 어차피 내 깜냥을 넘어서는 일이라 그저 먼저 보내드려야만 하는 게 여간 아쉽지가 않다. 차 막히는 거야 주열이도 마찬가지라, 뒤 이어 보내고 나니 고향친구들만 남는다. 술이라도 한잔 더하고 싶지만 혼자인 내가 가족들을 이끄는 친구들에게 그런 제안을 하기도 먹먹하여 속으로만 삼키고 있자니 경웅이가 고기 좀 잡아올 테니 회라도 먹잔다. 이렇게 좋을 수가 있나! 경웅이가 작살로 고기를 잡는 다는 데까지 배타고 들어가 바다에 다시 몸을 담구니 천국이 따로 없다. 누구라도 할 것 없다, 그대여! 남해 하고도 쪽빛 바닷물에 알몸으로 둥둥 떠다녀본 적 있는가? 자유니 탈출이니 평안이니 해탈이니 세상의 어떤 단어로도 나의 이 풍만한 한 때를 표현할 수 없다는 걸 느껴본 적이 있는가. 아니 그럴 것도 없이 서울서 온 당신을 위해 작살을 들고 바다에 뛰어드는 친구는 있는가. 뜨거운 오후, 친구가 잡은 생선을 회 떠느라 비지땀을 흘리는 친구는 또 있는가.

경웅아 고기잡느라 고생했다
봉기야 회 떠느라 욕봤다

마이클과 만세형, 주열이가 같이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판에 저녁 만찬이 이어진다. 장어하곤 조금 다른 것의 회무침이라는데, 이름은 까먹었다만 그 맛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하필 앉은 자리가 영태랑 봉기네 아들내미들 앞이라 딴에 이것저것 챙겨주다보니 자기네 아빠들은 그렇지 않은, 엉성하고 서툴기만 한 배려가 낯가지러워진다. 혼자라는 생각이 또 또아리를 뜨는 것이 장어 쓸개주만큼이나 쓰다.


통영에 왔다가 서울로 가고 싶지 않은 적이 한두 번이었나만, 이번 만큼은 ‘내가 뭐할려고 서울서 사나...’ 하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서울 가는 막차표를 끊어 놓고 다시 그 식당 앞 포장마차에 앉았더니 통영에서의 2박3일이 한 달처럼 펼쳐진다.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 것도 아니요, 돈도 무병장수도 바라는 바가 아니요, 그저 좋아라 하는 것은 술과 친구일 뿐인 놈이 술값 버느라 서울서 고생하는 것밖에 더 되나 싶으니 서울이 더욱 싫어진다. 언제든 멋지게 서울을 배반하기 위해 일을 한다만, 결국은 일에 매여 사는 꼴은 아닌가. 행여 친구도 일처럼 되려나. 좋아서 만난다는 것이 친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만나는 꼴은 되지 않을까. 그래 가끔 보자. 그들이 가족에게 더 가까이 있도록 서울로 뜨자. 이만한 호사는 평생 한 번이어도 족하지 않은가. 누가 이런 호사를 누리기나 한단 말인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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