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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코노스의 춤  

미코노스의 춤

가방 싸기 2006/07/02 17:58

그리스 미코노스에서 밤바다로 마실을 가던 길에 호텔 유리문 안쪽 로비의 한 복판에서 남자 하나가 나와 춤을 추고 있는 것을 보았다. 무대라고 따로 차려진 것도 없고 그저 테이블 몇 개를 치워 공간을 만든 것이 전부였다. 로비의 손님들은 자기 테이블에서 맥주를 홀짝이거나 박수를 치거나 하면서 흥을 돋우고, 그 춤추는 공간에서 조금 거리가 있는 자리의 사람들은 일어나 목을 빼며 그 사람을 응원하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소탈하고 자연스러운지, 처음에 나는 이 남자가 그저 자기 흥에 겨워 즉석에서 춤판을 벌인 것이라고 여길 정도였다. 그가 박수를 받고 퇴장하고 나니, 또 다른 남자가 나오고, 여자가, 이번엔 둘이서, 셋이서, 그러다 손님들이 가세했다가, 다시 춤꾼들이 나오고 하는 식이었는데 그들의 춤과 그 공간이 얼마나 다정하였던지, 나도 구석의 테이블을 하나 차지하고는 까치발을 하며 그들의 몸짓 하나, 표정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리스 여행에서 인상적인 것들이 숱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날 본 집시들의 춤(이건 정확하지가 않다)을 빠트릴 수가 없겠건만, 난 이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두질 못했다. 여행에 지친 동행은 숙소에서 곤한 잠을 자고 있었으므로, 카메라를 가지러 들어가느라 동행의 단잠을 깨우고 싶지는 않았던 탓이다. 아니 어쩌면 나는 카메라를 갖고 나오는, 길어야 10분의 그 시간을 아까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수첩을 들고 메모를 하는 수밖엔 도리가 없었는데, 오늘 그 무진장한 낙서들을 훑으며, 여행에서 참 황홀하였던 한 때를 떠올려 본다.


집시 음악. 아, 이것을 또 어찌 설명을 할까. 진도아리랑 같은 노동요도 아니요, 판소리 같은 사설도 아니고, 그렇다고 그저 흥겨운 춤곡이랄 수도 없는, 뭐랄까 먼 길을 가다 산중턱 즈음에 홀로 앉아 호흡을 고르듯 에야 데야 에헤야아~~ 내지른 그런 혼잣소리에 가사가 입혀져 노래가 된 듯한, 외롭고 구슬프기도 하지만 힘을 내어보자는 다짐이 녹아든 그런 음악이 나오면 한 뼘쯤 되는 폭을 가진 띠로 아랫배를 동여맨 남자 무희가 나와 뒷짐을 쥔 채 호흡을 가다듬는다. 먼저 나와 음악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나오면 그 음악에 끌리듯 나와 몸이 노래에 젖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마침내 허리를 슬쩍 펴며 마치 파도에 밀리기라도 하는 양 앞으로 뒤로 가만히 거니는 것으로 춤이 시작된다. 왈츠를 추듯 무릎을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다 이따금씩 노래에 너무 많이 젖어 좀 털어야겠다는 듯 뒷발질을 하거나, 제기차기 하듯 아주 짧고 빠르게 다리를 툭툭 꺾는다. 그렇게 노래에 젖고 털고를 반복하다가는 이젠 좀 조갑증이 난다는 듯 훌쩍 뛰어 올랐다가 뒤로 돌고, 노래가 그칠 즈음엔 다시 처음의 그 자리로 돌아와 몸을 사뿐히 날리거나,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다.


고개를 좌우로 팍팍 꺾는 것은 아니지만 어딘가 절도가 있고, 항상 부드럽게 움직이며 발동작만 할 뿐임에도 그것을 한껏 차올리는 일이 없다. 그저 무릎 관절 아래로만 펄럭거린다. 내가 까치발을 하고 서서 구경한 것도 이 때문이다. 앞자리 테이블들에 가리는 그 발동작을 빼고 봤다면 이건 춤이라고 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팔은 뒷짐을 쥔 그대로 이거나, 가끔 둘 이상이 춤출 때는 어깨동무를 하거나 서로의 허리를 뒤쪽으로 감싸 안는 것이 전부이므로 이 집시들의 춤은 결코 화려하게 보이지가 않는다. 딱히 배워야 할 것도 없이 그저 몸이 원하는 대로만 가면 될 듯하다. 그러니 가끔 손님 중 아무나에게 손을 내밀어 춤을 청하거나,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하는 것이리라.


나는 이 춤의 동작보다는 표정에 더 주목했다. 조금은 애처로운 듯한 눈빛으로 일관하다가 잠깐 웃었다가는 다시 매듭을 조이는 얼굴엔 아득한 첫사랑의 그림자가 잠시 스치는 듯도 하고, 못다 이룬 꿈에 대한 회한이 흐르는 듯도 하다. 두 사람이 춤을 출 때는 서로 얼굴을 마주보며 눈짓과 호흡을 나누고, 다음 동작을 약속이라도 하듯 서로 속삭이기도 한다.


부러웠던 것은 이들이 춤추고 있는 호텔의 로비, 그러니깐 춤판 그 자체였다.

무대와 관객이 따로 없는 그 로비에서 테이블 사이를 휘젓고 다니기도 하고, 가끔은 문을 박차고 호텔 바깥에까지 어깨동무를 하고 나갔다 오기도 할 뿐더러, 로비 바닥에 휘발유를 뿌려 불길을 내기도 하고, 어떤 이는 테이블 위에 올라가 묘하게 중심을 잡으며 춤추는 것으로 흥을 돋구기도 한다.


방금 ‘한 곡을 땡긴’ 남자가 바의 끄트머리에서 동네 처녀에게 수작을 거는가 하면, 춤을 추러 나온 여자에게 술잔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설령 그 술잔이 ‘작업용’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것 자체로 연애편지 이상이나 로맨틱하지 않은가. 더구나 술잔을 받은 여자가 그 술잔이 넘어지지 않게 아슬아슬하게 발을 놀려 좌중의 눈길을 휘어잡은 다음 원샷을 하면, 또 잔을 권했던 남자가 나와 술로 불콰해진 얼굴과는 사뭇 대조적인 경건한 표정으로 답례의 춤을 추기도 하는 풍경이라니.


춤이 어디 청춘들만의 것이랴. 흥이 점점 더해지자 노부부가 나와 뜻대로 되지 않는 몸을 아주 '예술적으로다가' 움직이며, 우리도 젊어 한 때는 이 춤을 끝내주게 췄었단다 라고 항변하듯 덧없이 흘러가버려 사무치게 그리운 어떤 것을 불러 낸 것만 같다. 40년 전, 그들이 연애할 때 혹은 결혼 피로연에서의 모습들이 이방인인 내 눈에도 어른거리는 걸로 보아 이 노부부는 잠시간 회춘한 것이 틀림이 없다.


그리곤 흥이 오를 대로 올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서로 서로의 어깨를 잡고 이 호텔 로비, 그러니깐 이 축소된 마을(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호텔의 경영주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구석구석을 기차놀이로 누비는 것으로 춤판을 마무리한다.

여기선 아무도 교양을 재지 않으며, 체면을 차리지 않으며, 애써 미소를 관리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럼에도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만 그 춤에 취했을 뿐이다.


나는 이 춤이 정말로 집시의 춤인지, 그리스 정교의 춤인지 아직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한다. 그 기원이 어디에 있든 그날 그 시간만큼은 그리스 하고도 아름다운 미코노스 섬의 춤인 것만큼은 분명했다. 아, 춤을 잃어버린 우리들은 얼마나 서글픈가!

                                                                                                  2004년 11월 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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