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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6반 컨츄리밴드와 동호음악제

받아쓰기 2006/07/03 12:15

1984년 12월 통영고등학교 1학년 6반 교실이 술렁거렸다.
대학입시를 목표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통고 재학생들은 정서적으로 많이 메말라 있었다. 이때 학도호국단이 ‘동호음악제’를 열면 활기를 찾고 공부도 더 열심히 할 수 있겠노라 학교 측에 제안을 했고, 학교의 허락을 받아냈다. 지금 생각해도 학도호국단이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반갑기 그지없는 아이디어였고, 이에 학생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당시만 해도 음악제를 한다는 것은 엄청난 사건이었고, 모험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그 모험을 충분히 즐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누가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각 반마다 서로 음악제에 참여하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우리 1학년 6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음악제 준비를 위한 학급회의가 긴급하게 열리고 TV에서 본 코미디 프로를 패러디 하자는 둥, 여장을 하자는 둥 차력 쇼를 하자는 둥 별의 별 아디어가 나왔다. 그러다 누군가가 1학년 6반 답게 ‘컨츄리밴드’를 구성하자는 말을 농담처럼 던졌다. 하지만 그걸 그냥 웃고만 넘긴 친구들이 아니었다. 과연 우리 반에는 초등학교 때 악대부를 지낸 친구들이 많았고, 나만 하더라도 틈 날 때마다 철제 필통을 두드려 대지 않았던가.

컨츄리밴드 쪽으로 가닥이 잡히자 아이들은 더욱 열을 띠었다. 이왕 그렇게 하기로 한 거 기성가수 노래를 따라 부를 게 아니라, 창작곡으로 승부하자는 다부지 포부까지 세웠다. 멤버를 구성하는 것도 일사천리였다. 1년이나 한 교실을 쓴 우리들은 서로를 속속들이 너무 잘 알았고, 컨츄리밴드에 어울릴 멤버를 눈 감고도 찍어낼 정도였다. 친구들은 작고에 초등학교 때 악대부에서 활동한 박봉호, 염용옥을 추천했고, 작사는 시를 아주 잘 써 문학소년으로 불렸던 옥영명에게 맡겼다.  기타는 소풍 때 통기타를 메고 나타나 아이들을 홀렸던 김효중이의 몫으로 돌렸고 아무도 이 흥겹고 흥분되는 추천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럼은 자연스레 내 차지였다. 쉬는 시간마다, 야간자율학습 시작 전 저녁시간마다 북대신 철필통을, 북채(스틱)대신 볼펜으로 장단을 울려댄 보람(?)을 그제서야 보게 된 것이다.
예심은 하루가 급하게 다가왔다. 멤버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자신을 위해, 자신을 뽑아준 급우들을 위해 각자의 최선을 다했다. 아주 추운 날에는 사발면 국물을 나눠 마시면서 미완성곡에 대해 함께 의논하고, 즉흥적으로 곡을 만들어 보기도 했다. 노래 만드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지만, 서로 둘러 앉아 머리를 맞대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노래와 우정이 완성되는 것 같았다.

마침내 마무리된 곡을 음악 선생님께 내보여 피아노 연주를 부탁드렸다. 선생님께서는 연주를 한번 해보시고는 아마추어치곤 아주 잘 만들었다 하셨다. 우리의 어두운 귀로 듣기에도 처녀작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감동적이었다.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었으니 오죽했으랴.

이제부터는 맹훈련만 남았다. 연습은 주로 교실에서 쉬는 시간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조건은 최악이다시피 했다. 내가 맡은 드럼만 해도 북 하나, 심벌즈 한 짝과 그리고 짝 잃어 외 심벌즈 하나가 전부였다. 그나마 북과 심벌즈는 음악선생님께 부탁해 교련시간에 사용하는 것을 빌린 것이 이런 형편이었다. 이것으로 드럼을 대신하려니 북과 심볼즈 한 짝과 외짝을 친구들이 각각 들고 서는 수밖에 없었다. 박상재, 윤철희, 이명근, 염용옥 등 여러 급우들이 번갈아 가면서 북과 심벌즈의 받침대 노릇을 해주었다. 지금도 그때 심벌즈를 잡고 힘들어하던 표정을 떠올리면 웃음이 난다.
그래도 연습과정은 비장했다. 한 번 연습을 하면 북과 심벌즈 소리에 1학년 학우들 모두가 6반으로 몰려오는 듯했고, 선생님들도 그 신기한(아니, 웃기다고 해야 하나?) 광경을 바라고고 발길을 한참 멈추시곤 하셨다. 그 시선이 또 우리 멤버를 우쭐하게 만들어 연습 중 실수라도 하게 되면 괜히 오바해서 서로를 때리거나, 책상을 치고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예심은 연습 때처럼 북 하나 북을 올릴 수 있는 나무 걸상하나, 심벌즈 한짝과 외짝. 그리고 창작곡으로 간단히 통과했다. 물론 심벌즈 한 짝과 외짝은 친구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잡고 있었던 친구들의 얼굴은 아직도 또렷하고 아름답게만 보인다. 초란한 것이, 준비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더 멋있었던 것 같다.
드디어 12월21일. 동호음악제 오전 프로그램은 3학년 형들의 반별 장기자랑으로 끝이 나고 오후 우리의 순서가 코 앞에 왔다. 겨울임에도 체육관내 열기는 식을 줄 몰랐다. 아니 우리 컨츄리밴드를 기다리느라 더 뜨거워지는 것만 같았다.
마침내 컨츄리밴드가 무대에 오르자 체육관은 환호성과 흥분의 도가니였다. 무대에는 연습 때 썼던 것과는 달리 그 풍채도 당당한 드럼이 준비되어 있었다. 수산대학의 한신 밴드가 세팅해놓은 것이었다. 탁!탁!탁! 내가 스틱을 두드리자 체육관은 이내 숙연해지고 우리의 노래가 울러 퍼지기 시작했다.

조용한 들녘을 지나
아련히 들여오는 소리는
나의 마음 속 깊이
여운을 남겨주네
향긋한 풀잎 속에
맺혀진 이슬들에
아름다운 모습들에
내마음을 열어주네
아~ 그대오 나의 추억 아~ 내마음 깊은 곳에
.....


실수가 조금 있긴 했지만 노래는 경쾌하게 끝을 맺었다. 앵콜!앵콜!앵콜!을 외치는 학생들을 보니 연주를 할 때보다 더 흥분되었다. 무언가 묵직하고 뜨거운 것이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것 같았다. 지금도 그것의 정체를 알 수는 없지만, 여지껏 그 때만큼 가슴이 뜨거웠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기억을, 함께 준비하고 노래했던 1학년 6반 친구들을 떠올리는 이 순간, 다시금 동호음악회의 그 체육관으로 가고픈 생각이 굴뚝같다.

변성길/통고 41기. 남망산공원 밑에서 부부가 약국을 운영한다. 딸이 둘이다. 악보사진은 클릭하면 더욱 크게 볼 수 있다. 왼쪽 위에 적힌 '뻘꾸덕'이라는 그룹이름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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