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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한 전화  
통영(統營) -백석  

아이티엔 생명을, 통영엔 자긍심을!

새소식 2010/02/05 18:20

아이티 구호기금마련 행사,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통영시민 네트워크 눈부셔

절망에 빠진 진흙쿠키의 나라 아이티에 희망을 전하기 위한 구호기금마련 행사인 ‘아이티에 생명의 쿠키를!’ 캠페인이 지난 26, 27일 이틀간 통영 시민들의 뜨거운 지지 속에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마무리 되었다.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통영성폭력상담소, (재)통영국제음악제 등 32개 시민단체 네트워크인 통영RCE 시민교육분과가 22일 금요일에 처음 머리를 맞댄 뒤 주말을 포함해 불과 나흘만에 일사천리로 행사를 열게 된 이번 캠페인은 그 시작부터 지속가능발전교육도시 통영시민의 남다른 힘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준비단계부터 후원 줄이어 ‘일사천리’

우선 급했던 것은 행사 장소 섭외. 첫 회의 중 월드마트(대표 남영휘)에 전화로 협조를 요청하자마자 흔쾌히 수락했을 뿐 아니라, 사랑의 쿠키 1천200개를 선뜻 기증하겠다고 나섰다. 또 시민 홍보용 전단지와 플래카드, 쿠기에 붙일 스티커, 인터넷 배너 등도 에이블 기획사(대표 박우권)에서 무료로 제작했을 뿐 아니라, 행사 준비 시간이 촉박해 이틀 밤을 꼬박 새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위기에 놓인 지구 반대편 나라 아이티에 통영 시민의 온정을 바삐 전하고자 행사를 다급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지역 언론사들의 측면 지원도 잇달았다. 한산신문과 한려투데이, 통영인터넷신문, 통영뉴스발신지, 굿데이뉴스 등의 미디어들이 앞다퉈 캠페인 날짜와 시각, 주요내용을 담은 배너

와 기사를 게재했을 뿐 아니라, 행사 상황도 실시간으로 보도하는 등 통영 시민들의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데 팔을 걷어붙였다. 또 영상 방송 제작사인 동아프로덕션(대표 박용수)은 바쁜 일정을 뒤로하고, 음식이 없어 진흙과 마아가린으로 만든 42원짜리 쿠키를 먹는 아이티 어린이들의 실상과 이런 가난마저 앗아가버린 7.3 규모의 지진 참상을 알리는 영상물을 손수 만들어 캠페인 부스에 전달해 주최측에 큰 힘을 보탰다.

청소년들, 겨울비에도 아랑곳 않고 손뼉치며 자원봉사

행사의 포문은 통영RCE 시민교육분과를 비롯한 여러 시민단체와 업체들이 열었지만, 행사 당일은 통영여고 환경동아리 ‘물푸레’와 통영청소년글로벌탐방프로그램 BTW에 참가했던 중고등학생들 등의 청소년들과 빈그릇 운동으로 잘 알려진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 환경 동아리 ‘에코캠퍼스’ 등의 자원봉사자들의 활약이 눈부셨다.

추위에도 아랑곳없이 당초 3시부터 열기로한 행사장에 아침부터 나와 준비를 마친 청소년 자원봉사자들은 생명의 쿠키 뿐만 아니라, 7명의 학생이 7시간 동안 손수 만든 천연비누 200여 개를 전시, 판매하거나 시민들의 발걸음을 행사장으로 이끌었다. 또 모금함을 들고 거북시장을 순회하는가 하면 팬더와 호랑이 마스코트를 입고 앙증맞는 춤을 선보여 행사장의 분위를 한껏 북돋았다. 행사 이틑날에는 겨울비가 내리는 굳은 날씨에도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을 오르고, 우비를 입은 채로 전날과 다름 없이 기꺼운 마음으로 행사를 도와 시민들의 열렬한 응원을 받기도 했다. 학원갈 시간도 모자라는 게 요즘 학생들이라지만 이날 캠페인에 참여한 학생들 모두가 내신을 위한 봉사점수와는 전혀 상관하지 않은 글자 그대로의 순수한 자원봉사여서 그 애틋한 마음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기금마련공연을 펼친 이영환 좋은음향 대표와 노경운 서울소아과 원장의 섹스폰 연주나 한음필의 흥겨운 노래, 통영시 소년소녀 합창단, 통영동중학교 섹스폰 그룹 더 샵 등의 무대도 모두 자선공연이었음은 물론이다.

기금마련 행사장은 감동의 무대

아이티 돕기 구호기금에 동참한 시민들의 면면 또한 감동 그 자체였다. 모두가 이름을 드러내는 것을 원하지 않아 실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시민들이 내민 감동의 손길들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뭉클한 장면들을 연출했다.

동생의 손을 잡고 나온 꼬마 아이는 동전밖에 없어 모금함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리기만 하다가 진행자가 동전도 괜찮다고 하자 금세 표정이 밝아지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냈고, 다음날 다시 동생 손을 잡고 와서 돼지 저금통을 깬 동전이 든 비닐주머니를 모금함에 넣고 갔다. 북신시장에서 장사를 하다말고 고무장갑과 장화차림으로 모금함을 바삐 찾아온 어머님이 계시는가 하면 행사 때문에 차가 막혀 다소 짜증이 밀릴 만함에도 불구하고 차문을 열고 나와 기부를 하는 택시와 자가용 운전자들도 눈에 띄었다. 모 학교의 한 반 학생들은 스스로 거둔 기금을 보충수업 때문에 전달할 시간이 없다며 잠시 집에 다녀오는 담임 선생님 편으로 그 훈훈한 정성을 모금함까지 전달했다. 제일고등학교 1학년 특별 A반 학생들도 직접 모은 성금을 들고 행사장을 찾기도 했다.

행사장 인근에서 떡볶기와 오뎅 포장마차를 하는 한 어머니는 가게를 비울 시간이 없다며 손님에게 대신 성금을 맡겨와 이에 감동한 자원봉사들이 생명의 쿠키를 들고 화답차 갔다가 사진을 찍었더니 드러내려고 한 일이 아니라며 사진을 절대 공개하지 말라며 부탁에 부탁을 거듭해 더욱 진한 여운을 남겼다. 행사 이틑날 미륵산 케이블카에서 게릴라식으로 열린 모금활동에서는 통영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들이 “좋은 곳에 와서 좋은 일 하고 간다”며 기꺼운 마음으로 십시일반 정성을 보탰다. 이 중 영국에서 부산으로 와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는 스티브 씨는 동료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모금함으로 다가와 지갑을 열며 자원봉사자들의 어깨를 다독이기도 했다.

어려울 때 더욱 빛을 발한 통영시민 네트워크

이번 기금마련행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차례도 쉬지 않고 사회를 맡는 괴력(?)을 발휘해 주위를 놀라게 한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의 최진웅 주임은 “한 푼 두 푼 어렵사리 번 돈을 기꺼이 베푸시는 어머님들의 모습이나 군것질 할 용돈을 모금함에 넣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을 볼 때 더욱 힘이 났다. 어려운 사정은 어려운 사람이 더 잘 아는 것 같고, 아이들 마음은 아이들이 더 잘 헤아리는 것 같다. 비록 동전이라고 하더라고 그 정성은 금일봉보다도 값진 것으로 다가 왔다”며 이번 캠페인은 얼마를 모으느냐보다 “어떤 정성을 어떻게 모으느냐에 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고 이틀간의 행사에 올인했던 감회를 전했다.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직 시민들과 청소년들만 믿고 아이티 구호기금 행사를 밀어부쳤다는 변원정 통영RCE 사무국 팀장은 “세계 8번째이자 우리나라 최초로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발전교육도시 통영의 시민과 청소년, 아이들에게 또한번 감동했다. 시민단체들 뿐만 아니라 학교와 청소년, 아이들을 아우르는 끈끈하고 촘촘한 네트워크의 힘을 다시 한 번 각인하게 된 이틀이었다. 이번 캠페인에 참여한 모든 분들게 고개 숙여 감사들 드린다”며 기대 이상이 아니라 상상을 초월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이번 행사에 대한 벅찬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이번 아이티 기금모금 현장모금액 총액은 6,976,970원이고 후원계좌를 통한 기금마련은 2월9일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이렇게 모은 기금은 유엔이 정한 지속가능발전교육도시 통영센터(통영RCE)의 시민교육분과가 주최한 만큼 유니세프에 통영시민의 성금으로 2월 10일에 직접 전달할 계획이다.

후원계좌: 농협 872-01-017360
예금주: 유엔지속가능발전교육통영

아이티 성금 마련 행사

“겨울엔 왜 냉면을 안 파는 거냐고요~”

경상대학교 해양과학대 환경동아리 ‘에코캠퍼스’ 우승협 학생

-팬더 마스코드를 입고 춤을 추느라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칼국수 집에서 시원한 물냉면을 주문했다가 겨울엔 냉면이 안 된다고 하자.

“아들~ 오늘 밤에 또 밤새야겠네”

통영자개교실의 김종량 선생님

-밤새 준비해온 자개체험 액세서리가 전시하자마자 동이 날 지경에 이르자 함께 자개교실을 운영하는 아들 김용석 간사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진흙쿠키는 필요없어요. 다른 분께 드리세요.”

첫째날 오후 행사장을 찾은 한 시민

-모금함에 기금을 한 뒤 자원봉사들이 나눠주는 ‘생명의 쿠키’를 진짜 진흙쿠키인 줄 알고 오해하며. 이날 나눠준 생명의 쿠키는 월드마트 내 베이커리에서 직접 구운 것으로, 그 맛이 일품이어서 많은 분들이 더 없냐고 조를 정도였다.

“취한 게 아니라 아픈 거에요!”

산양중학교 3학년 김도은 학생

-호랑이 마스코드를 입고 케이블카 정상에 오르며 자꾸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고 한 자원봉사자가 꼭 술취한 호랑이 같다고 하자, 마스코트의 머리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목이 부러질 지경이라며.

“자로 쟀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에이블 기획 박우권 대표

-행사장을 디스플레이할 현수막 크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러 가자고 한 말에 통영RCE 사무국에서 직접 재어서 보낸 치수라고 하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다시 가보자며. 실제로 박 대표는 통영RCE 사무국에서 보냈던 것보다 훨씬 큰 현수막으로 행사장 디스플레이를 한층 북돋웠다.

“1년 전부터 꼭꼭 숨겨둔 돈이에요”

2009 BTW 마몽드팀 손유경 팀장 (통영여고 2학년)

-지난해 통영RCE 청소년 글로벌 탐방 프로그램 BTW에 참가하면서 통영 청소년에게 맞는 관광상품 개발을 위한 펀드레이징으로 번 돈을 좋은 일에 쓰려고 아껴두었다가 이제야 꺼낸다며.

“두 탕 뛰시는 분이 많아요”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최진웅 주임

-이틀간의 행사 내내 사회를 맡으면서 유심히 보니 첫날 미처 준비가 안 돼 푼돈이나마 넣고 가신 분들이 다음날 꼭 다시 찾더라며.

“집 사람에게 패물 선물 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군현 의원

-나전칠기 체험부스에 와서 휴대폰 고리를 아내에게 선물한 뒤 멋쩍게 웃으며

“곰돌아 나 좀 도와줘”

진의장 통영시장

-꼬마 아이가 모금통에 성금을 넣으려고 까치발을 해도 손이 닿지 않자 그 아이를 껴안아 올렸지만 힘에 부치는 듯 팬더곰 마스코트를 애타게 부르며.

“방금 그 돈 다시 꺼내주세요.”

김미옥 통영시 의회 의원

-모금함에 성금을 넣자마자 사진기자들이 몰려와 다시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자 아까워죽겠다는 듯한 표정을 능청스레 지으며 던진 순도 100% 농담.

“자로 쟀다고 해서 다 되는 게 아니거든요”

에이블 기획 박우권 대표

-행사장을 디스플레이할 현수막 크기를 다시 한 번 확인하러 가자고 한 말에 통영RCE 사무국에서 직접 재어서 보낸 치수라고 하자,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니 다시 가보자며. 실제로 박 대표는 통영RCE 사무국에서 보냈던 것보다 훨씬 큰 현수막으로 행사장 디스플레이를 한층 북돋웠다.

“이것보다 좋은 공부가 어딨겠어”

동아프로덕션 박용수 대표

-행사장에 쓸 홍보 영상을 만드는 동안 영상 편집을 배우러 학생들이 몰려들자 아이티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 만큼 좋은 공부도 없으니 자료 화면에 집중하자고 독려하며.

“주말에 케이블카에서 한번 더 합시다”

한국해양소년단 경남남부연맹 조경웅 부장

-미륵산 케이블카에서 게릴라 모금활동을 펼쳐보니 평일인 데도 불구하고 관광객들의 반응이 아주 좋다며, 본 행사는 마무리 짓더라도 주말에 한 번 모금활동을 하자는 제안. 이번 행사를 구상한 주인공이다보니 아무래도 홍보와 준비 기간이 너무 짧아 아쉬움이 컸던 듯.

생명의 쿠키 기금마련 행사를 주최한 통영RCE 시민교육분과 32개 단체

통영YWCA/바르게살기 통영협의회/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동부사무소 /통영문화원/통영시청소년종합지원센터/통영무형문화재보존협회/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재)통영국제음악제/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통영지부/통영전통공예관운영위원회/통영수산과학관/한국해양소년단경남남부연맹/경상대 해양과학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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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금마을과 비진도, 그리고...

섬 섬 섬 2009/02/03 14:01

여객터미널에 ‘대항’이라고 표기되어 있기에 ‘안 가본 섬이구나, 어떤 모습일까’ 하고 배에 올랐다가 우연찮게 김기자를 만났다. ‘대항’이 바로 4월에 갔던 대매물도라는 말을 듣곤 잠시 절망했으나 그때는 가보지 못한 당금마을로도 길이 이어진다니 배삯이 아깝지만은 않겠구나 했다.



대항에서 당금마을로 가는 길은 아늑하고 정겨운 데다 바다의 여백이 많다. 두 마을의 사람들이 제법 오가는 길이라 그런지 두미도처럼 험하지 않다. 흙길이라 추도의 신작로와도 또 다른 맛이 있다. 지금 들먹이는 세 길은 시멘트로 만든 해안도로가 아니라 섬의 능선을 따라 난 흙길이라 먼 바다를 옆구리에 끼게 된다. 답답한 날, 혼잣소리를 아무렇게나 흥얼거리기에 딱 좋은 길들이다.

구비를 돌아 처음 만난 당금마을을 카메라에 담으며 ‘옹기종기 다정하것다’는 인상을 받았다. 집들이 가까이 붙은데다, 주홍색 슬레이트 지붕을 한 집이 많아 형제들 마냥 닮아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집이 제법 되는데도 마을을 한 바퀴 도는 데는 30분이 채 안 걸린다. 다른 섬처럼 발목을 잡는 폐가가 적은 탓도 있었을 테지만.

마을은 조용하다. 모두 바다로 나갔는지 “오데서 왔어요”라고 묻는 이 하나 없다. 인기척이라곤 포구의 해녀 작업장 안에서 오가는 아녀자들의 소리뿐이다. 그것도 도통 알아먹을 수가 없다. 제주도 사투리인 듯하다. 포구의 산판에는 지금 막 뭍으로 올라온 자연산 굴과 군소가 널부러져 있다. 마침 술이나 한잔 할 판이었는데 딱 좋은 안주가 아닐 수 없다. 필시 이것들의 주인은 아까 작업장에서 들었던 목소리 중 하나일 테지만 문을 열기도, 불러내기도 마땅찮다. 잠수복이라도 갈아 입는 중이면 얼마나 낭패인가.

한 10분? 임자인 듯한 아주머니가 나타나길래 굴을 오천원어치만 달라 했더니 코웃음부터 친다. ‘술안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랄 텐데요’ 하는 듯하다. 다시 만원어치를 달라 했더니 그래봤자 10개밖에 안 된다고 한다. “그만하면 되겠네요. 혼자인 데다 안주를 많이 하는 편이 아니구요.” 알겠노라 굴을 까주는데 아무래도 10개는 훨씬 넘게 주는 듯하다. 그걸 봉다리에 들고 구판장엘 가 좀 씻어주고 소주 한 병, 컵라면 하나 달라 했더니 구판장 아주머니 대답이 걸작이다. “이만 하면 컵라면 없이도 배가 부를 겁니다”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기를 쓰는 도회지 가게에선 도무지 들을 수 없는 말이다. 그 바람에 나조차 마음이 넉넉해져 “아주머니도 좀 드세요”했더니 고개를 가로지르며 묻기를 “이 굴을 얼마에 샀소?” 한다. “만원칩니다” “아이고 소매물도 배가 와서 사도 2만원치는 되것네요. 그 사람들이 이걸 또 관광객들에게 내놓으면 3만원은 받겠는데요” 하니 굴을 먹기도 전에 배가 부르다.


크고 굵고 탱탱한 자연산 굴 맛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입 안 가득 짙고 향그러운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다. 읍도에서 맛본 돌굴과는 또 다른 맛이다. 섬은, 통영의 섬들은 가는 곳마다 이렇게 제각각의 맛을 품고 있기에 지겹거나 식상할 수가 없다. 그 맛들이 계절마다 또한 다르다는 것을 알았으니 섬으로의 여행은, 섬에게로의 여행은 멈춰지지가 않는 것이리라.

생굴만 먹으니 냉냉해서 컵라면을 주문했더니 “머할라꼬요?” 한다.

“국물 안주라도 할까해서요”
“그라몬 이 굴을 몇 개 삶고, 그 국물을 넣어서 묵는 기 나을 낍니다. 내가 끼리 주께요”

그렇게 나온 컵라면은 또 얼마나 예술인가! 멋드러진 안주에 술도 담배도 충분하니 바다와 섬과 바람을 술친구로 불러 앉혔다. 내가 말이야... 우리 누나가 말이야... 혼자만 씨부렁거려도 아무도 탓을 하지 않는데 여든 두 해를 사셨다는 섬 할마시가 불쑥 말을 건다.

“치운데 와 안에서 안 묵고...아, 바다 구경할라꼬요? 것도 재미는 재미지요”

할마시는 제주서 물질하러 왔다가 당금마을에 눌러 앉았단다. 제주도에 대면 뭍이 코앞인 대매물도는 할마시한테 육지나 매한가지였을 터. 자식도 없이 그렇게 단 둘만 살다 3년 전 할아버지를 떨군 이야길 하면서도 “보고 싶겠네요”라는 말에는 “머시, 하나도 안 보고 싶다”고 단호하게 턱을 돌린다. 배도, 밭도 없었다니 할마시 물질로만 버텨왔을 시린 세월이 절로 스친다.

“4시 반 배로 나갈라꼬요?”
“네? 그때도 배가 있습니까?”
“하모, 요새는 하루 세 번 안 있지요”

뜻밖의 소리에 머릿속이 허둥지둥이다. 남은 술 다 먹지 않고도 이제 막 잠이나 잘까 했던 차, 깨면 밤일 테고 억새밭에 별 보고 누울 계절도 아니다. 그렇다고 집으로 간들 또 할 짓이 있나. 아, 비진도! 대항 오는 길에 잠시 스쳤을 뿐이지만 펜션과 노래방이 점령해버려 어딘지 서글펐던 그 비진도. 그래, 가보자. 거기 모래사장이나마 밟아보자.


펜션들이 차고 넘치는 비진도에 숙소가 없을 것이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겨울엔 아예 영업을 않는 것이다. 통영 안에서도 알아준다는 시금치를 묶는 동네 어른들 틈으로 가 방 하나만 내어 달라고 해도 선뜻 나서는 이가 없다. 찬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시금치 하나면 됩니다” 했더니 보일러 돌리기는 마땅찮고 전기장판에 자려면 자란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짐을 부려놓고 해변으로 나서는데 아까 함께 내렸던 두 처자는 아직도 숙소를 정하지 못해 큰 배낭을 들고 이리저리 낑낑대고 있다. 그게 안돼보여 좀 도와줄까 했더니 알아서 하겠다며 반대쪽으로 간다. 여름 한 철을 위해 지은 펜션과 -말이 펜션이지 싸구려 여관에 불과한-, 노래방은 겨울엔 흉물에 지나지 않는다. 하다못해 식당도 밥을 팔지 않는다. 여름에는 시달리고 겨울에는 처절하게 외면 받는 비진도. 사시사철 사람들이 찾는 소매물도와는 상반된 풍경이 아닐 수 없다. 노을과 해변은 여전히 이쁜데도 말이다.

저녁상을 차린 어르신은 물 자랑이 한창이다.

“우리집 물맛이 얼매나 좋다고. 속병도 다 낫는다니까. 우리 아들도 여기 들리면 꼭 물을 가져가.”

물에도 맛이 있다는 건 섬에 다니고 나서야 알았다. 수도, 추도에만 물 자랑이 있는 줄 알았지 비진도에서는 뜻밖이다. 좀 다르다면 비진도 전체나 마을 우물 맛이 아니라 이 한 집만 그렇다는 것인데, 그 맛은 동냥을 하고 싶을 정도다. 동네 어른들이 작업을 하는 걸 봐서 그런가 물이 좋다니 더욱 그런가 시금치 맛도 일품이다. 아삭아삭, 씹을 때마다 살짝 얼린 해풍이 녹는 듯하다. 그걸 청해서 술안주로 삼으려니 낮에 먹었던 굴 생각이 든다. 하룻만에 두 섬에서 빼어난 맛을 섭렵하고 다니니 이만한 팔자가 또 있으랴.

아침. 어르신은 마치 자식이라도 되는냥 기침도 없이 함부로 문을 열고는 “밥 묵자. 배 시간됐다” 하신다. 그 투박함이 어딘가 향그롭다. 명절만 빼면 나를 이렇게 깨우는 이 누가 있으랴.

나오는 길에 어제 보았던 두 처자를 다시 만났다. 한 명은 부산에서 한 명은 일본에서 오는 길이라 한다. 서울 가기 전 여행하는 길이라는데, 통영은 “아무렇게나 막 찍어”서 왔다 한다. 추슬추슬 비는 오는데 통영을 헤매고 다닐 처지에 마음이 쓰인다. 아침도 못 먹고 나온다 하길래 우선 서호시장에 가 시락국부터 시키고, 내 몫으로는 막걸리를 청했다. 한 처자가 그 맛을 보더니 자기도 한 대접 달라 하자 주인 할마시가 나한테 내준 것보다는 작은 대접을 내놓는다. 눈이 동그래진 처자. “잔이 왜 달라요?” “총각껀 이천원짜리고 각시껀 천원짜리지” 한다. 이 할마시, 전에 RCE 자원봉사자 대학생들이랑 왔을 때 양푼에 밥 가득 내놓으며 “모자라면 더 묵어라” 했던 분이다. 당금마을 구판장에서도 그랬지만 따로 말이 없어도 손님 입장에서 생각하는 이런 배려를 만나면 사는 맛이 진해진다.



시락국밥집에 가방을 두고 셋은 세병관으로 향했다. 세병관이 가지는 의미도 의미지만 거기서보는 통영항의 모습은 또 얼마나 빼어난가.

“여기서 통영을 굽어보니 이순신 장군이라도 된 기분이지요?”

“아뇨 전 원래 공주라서, 얘는 시녀구요...호호호”

그 웃음을 가지고 중앙시장 활어회 골목을 스쳐 동피랑으로 올랐다. 인터넷 검색이라도 하고 왔으면 동피랑을 빼먹을 리 없겠지만 막 찍어서 왔으니 여길 알 턱이 없다. 통영에 와 몇몇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동피랑을 추천하진 않더라고 한다.

동피랑 벽화 골목에서 두 처자의 카메라가 유난을 떤다. “아니 세상에, 어머나” 감탄사도 연발이다. 벽화도 벽화지만 바다가 보이는 언덕 골목길의 정취에 취한 듯하다. 어쩌면 내가 동피랑에서 살 게 될련지도 모른다고 하니 “너무 샘나요, 나중에 놀러오면 방 빌려주실거죠?” 동그란 눈을 하는데 <슈렉 II>에서 본 고양이 같다. 정말, 동피랑에 살게 되면 이런 눈들을 많이 만날 것 같다.

충무김밥은 너무 흔하니, 옛날식 꼬지김밥을 사 가서 자랑하라 일러주고 시락국밥집에 맡겼던 가방을 챙겨들었다. 대매물도, 비진도를 여행하고 낯선 이를 만나 아무 바라는 것 없이, 오로지 고향을 자랑하느라 반나절 가이드를 하고 나니 소원 중 하나를 이룬 것만 같다. 한 때 내 꿈은 여행가, 여행 가이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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